리더가 도망쳤고, 나는 남겨졌다.
올해 초 게임이 출시된 후에 우리 팀은 꽤나 여유로웠다.
1~2개월 단위로 계획되어 있는 업데이트에는 적어도 내가 할 업무는 많이 없었다. 나는 하루하루 평화롭지만 무료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업데이트가 끝나면 합류하게 될 다음 프로젝트는 꽤나 매력적이었다. 내가 평소에 "살면서 한 번쯤은 이런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게임이었다. 벌써부터 팀에 합류하면 어떻게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며, '적어도 다음 프로젝트는 지금보다 낫겠지'라는 기대감에 부푼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나에게 일이 주어졌다.
30명 정도가 참석하는 큰 회의에서, 갑작스럽게 기존 프로젝트를 활용해 진행되는 신규 업무가 공유됐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는 거절할 수도 없이, "A 프로젝트는 은성님이 진행하는 거죠?"라는 식으로 일을 떠맡게 되었다.
프로젝트에 대한 애정이 모두 식어버린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그냥 이 팀에서 '내가 가장 잘하니까'라는 이유였다.
내가 정말로 기분이 나빴던 점은 그 일이 규모가 꽤 큰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공유조차 되지 않았고, 게다가 논의나 합의 없이 폭탄 돌리기 식으로 그 일을 내가 떠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꽤 긴 기간 동안 진행되어야 하는 그 업무는 공교롭게도 신규 프로젝트의 가장 바쁜 시기와 겹쳤다.
그런데 적어도 택일을 해서 진행하는 건가 싶었던 나에게 들려온 것은 그저 "병행하라"는 명령뿐이었다.
벌써부터 미래에 발생할 업무 과부하가 상상되며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날은 온종일 메모장에 "퇴사하고 싶다"만 연달아 적었는데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이었다.
리더가 갑자기 우리를 소집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갑작스러운 사내이동 소식을 전했다. 바로 다음날 떠난다고 했다.
나는 벙쪘다.
사실 조금은 이 사람이 자신이 맡은 책임에 대해 부담스러워하고 있고, 떠날 수도 있다는 걸 예상하고 있었다.
근데 적어도, 이 프로젝트의 마지막까지는 책임지고 떠날 줄 알았다. 아직 업데이트가 끝나지 않았고, 리더 업무 외에도 중요한 일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리더는 무책임하게 도망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빈자리를 메워 프로젝트를 리딩할 사람으로 나를 지목했다고 전했다. 이미 유관부서 등에 공유가 된 상태라 무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 일에 대해 단 한 번도 전달받은 적이 없는데 말이다.
더 어이가 없는 건, 우리 팀에서 연차도 직급도 내가 가장 아래였다는 것이다. 아무리 내가 잘하고 신뢰받고 있다고 해도, 선배들에게 업무를 지시해야 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프로젝트가 거의 마무리된 상황이라 팀원 모두의 흥미와 열정이 식은 이 상황에서, 나는 "쾌락 없는 책임"을 떠맡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갑작스럽게 세 개의 책임을 병행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됐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하는 것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세 개나? 게다가 그중 둘은 내가 원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구조에 치가 떨리게 질려버렸다.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퇴사밖에는 답이 없는 것 같았다.
기회도 지금 뿐인 것 같았다. 아직 다음 프로젝트에 투입되기 전이고, 그 모든 "책임"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그렇게 나는 퇴사를 할지 말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결정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