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일기로부터..
프로세스란 허상이다.
내가 인턴십을 하고 있던 시절, 회식 자리에서 선임분께 들었던 말이다.
그 당시의 나는 회사를 입사한 이유 중 하나가 팀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프로세스를 배우기 위해서였기에, 이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막상 본격적으로 회사에서 일을 해보니, 이 말에 공감하게 되었다.
프로세스란 대체 무엇일까?
나는 이를 어떤 사건에 대해 대응하는 일련의 연속된 행동 체계라고 정의하고 싶다.
물론 프로세스가 유의미하게 작동하는 상황도 있다.
예를 들어 사용한 법인카드 지출을 승인받는 결재 프로세스, 월 단위의 수익과 지출을 정산하는 회계 프로세스처럼, 변화가 적고 반복적인 업무에서는 프로세스가 잘 작동할 수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실무 상황에서는 이런 일관된 흐름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요구사항은 시시각각 바뀌고, 예측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럴수록 우리는 유연하게 대응하는 동시에 다음에 동일한 상황이 발생할 때를 대비하여 프로세스를 다듬어나가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였다.
어느 날의 일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프로세스에 질린다.
월요일 전달 예정인 빌드를 당일 오후 5시에 뽑고 있으며,
이슈가 터져 5시 30분이 넘어가는 시점에 아무런 대안도 세우지 않고 막연히 기다리다가
6시 30분이나 되어서야 "까먹었다"며 당장 오늘 할 일을 추가하고 있다.
무슨 상황인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이러하다.
빌드를 월요일에 전달하겠다고 하면, 적어도 전날까지는 준비를 마치고 당일 오전쯤 정리해서 보내는 게 정상적인 프로세스이다.
그런데 우리 팀은 유난히 당일치기로 빌드를 준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리더가 늘 정해진 스펙 외의,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부차적인 업무들을 추가해서 완성이 밀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달이 지연되면 단순히 우리 팀이 야근하고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빌드를 전달받기로 한, 그리고 그걸로 자신들의 업무를 진행해야 하는 유관부서의 시간도 함께 멈춘다. 우리 팀 밖으로 피해가 전파되는 것이다.
내가 진짜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은, 이러한 상황이 한두 번 일어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한 번 정도는 실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수가 있었다면 그다음에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프로세스'의 목적이다.
하지만 이 팀에는 반성이나 성찰이 없었다. 항상 눈앞의 일을 주먹구구식으로 처리하는 데에만 급급했고, 일이 잘못됐을 때 책임지는 사람도 없었다. 결국 손해는 침묵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감당할 뿐이었다.
이러한 구조는 사람을 정말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큰 회사든 작은 회사든 상관없이 이 같은 '주먹구구식 운영'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렇다면 프로세스는 정말로 허상일 뿐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통해 학습하고 다음에는 더 나은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정리해 나가는 것. 그 반복 속에서 비로소 프로세스는 실체를 갖는다.
우리가 질려버리는 것은 '프로세스' 자체가 아니라, 프로세스를 가장한 무책임과 반복되는 미숙함이다.
프로세스는 결국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반복되는 실수를 반성하고 책임지려는 최소한의 태도가 없다면, 그 어떤 프로세스도 의미 없다.
하지만 그 반대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조금 느리더라도, 한 걸음씩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의지가 있다면 그제야 프로세스는 진짜 우리의 무기가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런 과정을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