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왔던 것 같다. 특히 11월 말에 쏟아진 폭설은 재해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퇴근길 뉴스에서는 "내일 폭설이 예상되니 외출을 삼가라"라고 경고했고,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재택근무 공지를 기다렸다.
하지만 밤 11시가 넘은 시간, 도착한 메시지는 간결했다.
"정상 출근 해주세요."
예상대로, 다음 날 아침 출근길은 지옥이었다.
자가용을 몰고 나오던 누군가는 도로 위에 갇혔고, 또 누군가는 눈길에 미끄러져 꼬리뼈를 다쳤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나는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빙판길 위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온몸에 긴장을 유지한 채로 걸어야 했다. 회사에 도착했을 때 즈음엔 찌르는 듯한 복통이 몰려왔고, 발목은 언제 삔 것인지 욱신거렸다.
내가 견딜 수 없었던 건 이 모든 고생이 '불가피했던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었다.
우리 회사는 이미 원활한 재택근무 체계를 갖추고 있었고, 그날 출근을 강행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임원진들이 "효율이 안 나온다"며 재택근무를 꺼린다는 소문만 알음알음 들려오긴 했지만 말이다.
많은 동료들이 연차를 냈기에 회사는 조용했고, 연말이라 연차가 없어 출근할 수밖에 없었던 나는 8시간 동안 아주 '효율적으로' 일하다 집에 갔다. 정말 효율적으로.
문득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의 일이 생각났다.
그때 우리는 근무 도중 눈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큰 눈이 아니었음에도 회사는 즉각 "지금 당장 퇴근하세요. 8시간을 근무하지 않았어도, 근무시간을 인정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우리를 집에 보냈다. 그 후에는 (눈이 오지 않아도) 주 2회 재택근무를 하는 등, 근무자를 배려하는 정책을 펼치는 듯하였다.
이제 와 생각하면, 갓 입사한 직원들의 호감을 얻기 위한 보여주기식 행동이었던 것 같다.
나는 마치 인간에서 기계 부품으로 전락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회사의 입장에서 우린 아픔을 느끼고 감정이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저 8시간 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킨 채로, 굴러가기만 하면 되는..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부품 하나일 뿐이었다.
그날 느낀 무력감에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내년 겨울에는 이 회사에 있고 싶지 않다."
적어도 부품이 아닌 사람으로 대우받을 수 있는 곳에 있고 싶었다.
사람답게 일하고 사람답게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원했다.
그리고 결국 나는, 겨울이 오기 전에 그 다짐을 실행으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