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하겠지

- <어린 왕자>를 읽고

by 나의 바다

어린이였던 모든 어른들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고,

관계를 맺는다는 건 결국, 책임을 지겠다는 선언이다.


그 책임은 반드시 말로 약속되지 않는다.

“만약 네가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하겠지.”


4시에 오겠다는 약속은 3시부터의 감정으로 증명된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기억하고, 그 사람만의 시간을 내어주는 일. 그게 바로 ‘길들여짐’이라는 관계의 진짜 무게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의 의미를 알려준다.

처음에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였지만, 서로를 알아보고, 시간과 마음을 내어주고,

기억을 공유하게 되면 우리는 서로에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된다.


“너는 나에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야.”


관계란 그렇게 시작된다.

시간을 함께 보내며, 기다림을 품으며, 어느 날 문득 그 사람의 말투, 발걸음, 그가 좋아하는 시간의 색깔까지 내 마음에 스며들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길들여진 존재가 된다.


길들인다는 건 책임을 지는 일이다.

말을 건넨 순간부터, 시간을 함께 나눈 그때부터, 우리는 더 이상 서로에게 가벼운 존재가 아니다.


어린 왕자는 세상의 수많은 장미꽃 중 자신의 별에 있는 장미가 ‘유일한 존재’라는 걸 알게 된다.


관계의 유일성은 바로 ‘책임감’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사랑을 숫자나 조건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어떤 시간을 주었는가’로 환산하게 만든다.


어린 왕자가 말하는 사랑은 소유가 아니다.

그는 수많은 장미들 사이에서 단 하나의 장미를 떠올리고, 자신이 물을 주고, 바람막이를 씌우고, 투정까지 받아준 그 장미에게 돌아간다.

‘길들여졌기 때문에, 그 장미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된다.


이 말은 아이들보다 오히려 어른들에게 더 어렵다.

왜냐하면 어른들은 가치를 수치로 환산하고,

사랑을 조건으로 평가하고, 관계를 효율로 판단하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는 그래서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어린아이처럼 마음을 내어주는 법, 길들여짐의 책임을 기꺼이 감당하는 법, 상실 이후에도 자신을 잃지 않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하는 이들에게 주는 작은 안내서다.


책을 덮고 나서 내가 누군가의 장미였던 적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를 3시부터 기다렸던 적이 있었음을,

혹은 누군가가 나를 위해 그렇게 기다려주었음을, 늦게나마 알 것 같았다.


“당신은 누군가의 3시였던 적이 있나요?”

이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리고 아마, 그 무게를 제대로 느끼는 사람이라면 누군가를 쉽게 사랑하지 않을 것이고, 한 번 사랑한 사람을 쉽게 잊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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