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왜곡이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by 나의 바다

“긍정 왜곡 수치가 조금 높게 나왔어요.”


낯설었다. 긍정인데… 왜 왜곡이라고 하지? 머릿속이 잠시 멈췄다.

“힘들거나 불안한 상황에서도, ‘괜찮다’, ‘나는 잘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너무 강하게 설득할 때 나타나는 경향이에요. 감정 자체를 억누르며 나조차 나의 진짜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죠.”


심리학에서 말하는 긍정왜곡(Positive Distortion)은 자신의 심리적 어려움이나 취약함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괜찮은 척’ 포장하는 성향을 뜻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과하게 타이르고 통제하는 심리적 방어기제다.


보통 이런 왜곡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이런 말들로 나타난다:

- “저는 잘 지내요.”

- “이 정도는 괜찮아요.”

- “그 정도는 누구나 겪는 거잖아요.”

그런 말들 속엔 사실 ‘나조차 내 상태를 들여다보는 게 두려운 마음’이 숨어 있다.


그 안에는 ‘약해지면 안 돼’, ‘감정에 휘둘리면 무너질 거야’라는 두려움이 숨어 있다.

그리고 그런 무의식적인 억눌림 속에서 나는 나를 돌보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내 마음은 아프다고 소리치고 있는데, 나는 괜찮은 척하며 그 입을 막았다.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믿었고, 그렇게라도 버티지 않으면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았다.


‘긍정왜곡’이라는 말은 결국, 나를 드러내지 못했던 내 삶의 방식에 처음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내가 그래서 괜찮은 척을 했구나. 그렇게라도 살아보려 애썼던 거구나.’

그건 자책이 아닌, 오히려 생존의 기록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배려 많고, 밝고, 감정 기복 없이 단단한 사람.

그래서 힘들다는 말도 조심스러웠고, 슬픔이나 분노보다는 이해와 수용을 먼저 꺼냈다.


상대가 날 어떻게 볼까를 항상 의식했고, ‘이 정도는 괜찮아야지’ 하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나는 포장지처럼 말끔하고 빛나 보일 수도 있었지만, 사실은 안쪽에서 점점 숨이 막혀가고 있었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밝아 보이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밝지 않은 나를 그대로 안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괜찮은 척 잘해왔던 내가, “괜찮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언젠가 오겠지.


상담실을 나서는 길에 문득, 문손잡이를 잡는 내 손에 힘이 조금 들어가 있었다는 걸 느꼈다.

평소 같으면 말없이 가볍게 나왔을 그 문을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열고 나왔다.


‘긍정 왜곡’이라는 말이 아직도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그 낯선 단어가 꼭 나를 부정하는 말만은 아니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괜찮은 척을 멈추는 건 무너지는 게 아니라 비로소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작은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갔다.

나는 그 바람 사이로 조용히 걸어 나왔다.

괜찮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어가는 길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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