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구나.”

모두모두 제자리

by 나의 바다

“그랬구나.”

누가 듣기엔 평범한 반응 같지만, 어떤 순간에는 그 말 하나가 마음을 조용히 감싸줄 때가 있다.


그 말은 설명 없이도 이해하는 태도이고, 책임을 묻지 않고도 건네는 공감의 방식이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타인에게는 자주 건넸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한 번도 해준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립다는 마음은 애초에 합리적인 감정이 아니다.


돌아가고 싶은 장면은 대부분 고요하고 따뜻한 순간들이고,

우리가 안녕을 말하는 이유는 대체로 소란스럽고 아팠기 때문이다.


기억은 종종 균형을 잃는다.

그 사람이 웃던 얼굴, 익숙했던 말투, 함께 걸었던 길은 불쑥 마음을 흔들어놓지만, 그 웃음 뒤에 내가 삼킨 말, 꾹 눌러 참았던 감정, 지워지지 않는 상처들은 그리움이라는 포장지 속에 가려질 때가 많다.


결국 우리가 그리워한 것은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 관계 안에서 한때 꿈꾸었던 가능성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이해받을 수 있지 않을까.’

‘다른 말이 나왔더라면, 다른 결말이 있었을까.’


그런 가능성에 매달렸던 나는 어쩌면 ‘그에게 맞춰 만들어낸 내 모습’을 더 사랑했던 건지도 모른다.


나를 몰라준 그 사람에게 끝까지 닿으려 했던 말들은, 사실 내가 나 자신을 설득하려는 말이기도 했구나.


그는 이미 떠난 사람인데 자꾸 해명하려고 붙들고 있었던 것이지 않을까.


검사 결과가 나오면 내가 마주하게 될 나의 많은 모습들이 두려워졌다.

내 기질, 내 성격, 내 불안과 기대,

내가 왜 지금 눈물이 나지 않고, 왜 이렇게 오래 힘든지 어느 정도 파악될 거라는 생각에 괴로워졌다.


하지만 그 모든 생각들 뒤에 내가 나에게 겨우 하나 건넬 수 있었던 말은

“그래도… 그랬구나.”라는 한 줄의 온기였다.


나는 더는 누군가를 설득하려 애쓰지 않기로 했다.

나를 갉아먹고 희생시키던 태도를 조금씩 걷어내며 모두 제자리에 돌려놓고 싶어졌다.


상처가 사랑의 증거는 아니고, 기다림이 애틋함의 이름은 아니다.


나는 나를 돌보지 않았던 사람에게 다시 가서는 안 된다.

그건 미련이 아니라 자기 배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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