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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고 조금은 다정한 사람들

by 오옐


20대 때, 하루 혹은 일주일 동안 아르바이트로 온라인 쇼핑몰 옷 포장, 아파트 모형의 미니어처 제작, 잡지 편집 마감을 한 적이 있다.

정해진 일을 하고 끝내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하는 분들이 나누는 대화를 필터 없이 듣게 된다. 손은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그들의 수다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때 들리지 않는 것처럼 듣는 법을 나름 터득했던 것 같다. 굳이 알아야 하는 이야기가 아닌데 너무 깊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공감하는 척하면서 한쪽으로 흘리기. (점심시간에는 그 기술이 더 유용하게 쓰인다) 숨 막히는 어색함. 서로 궁금하지 않은 사이의 안부를 묻고 답하는 무미건조한 시간은 아무런 의미도 없이 지나갔다.


최근엔 일을 하면서 예전과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들 낯설고 어색할 때, 늘 주고받는 뻔한 말 대신 낯설고 새로운 이야기를 나누며 그 답답하고 지루한 공기가 조금이라도 환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깊게 파고들지 않고 겉도는 대화라도 그냥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게 아닐까.

숨 막히는 상황들과 여러 일들, 굳이 여기가 아니라도 스트레스받을 게 차고 넘치는데 나와 일을 할 때만큼은 그런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덜 느꼈으면 했다. 3개월이라는 기간이 정해져 있고, 내 이전 사람이 너무 예민했던 사람이기에 더 그랬을 수도 있다. 아마, 더 오래 함께 일했다면 그렇게까지 사람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장소의 특성상 같은 자리에 앉아 일하지만, 만남과 헤어짐이 빈번하게 반복되기도 하고 그 틈으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던 것 같다.


같이 일했던 분이 다른 곳으로 이직을 계획하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겁이 많은 편이야. 일을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쌓아둔 것들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다른 곳으로 가곤 해.” 하지만 나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보다 겁이 없어 보였다.

설령 정말 겁이 많다고 하더라도 “나는 겁이 많아.”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모습에서 오히려 베짱이 느껴졌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내가 오래 다닐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고 보낸 시간도 사실은 겁이 많아서였던 건 아닐까. 조금 더 깊게 들어가면 골치 아파지는 문제에서 한 발짝 떨어지고 싶었던 건 아닌지. ‘막상 닥치면 잘할 거면서, 에이, 다 할 줄 알면서’라는 말의 무게를 덜어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3개월이 다 되어갈 즈음, 그분이 나에게 “우리는 나중에 볼 것 같아.”하고 말했다.

“다음에 또 봐.”라는 뻔한 인사말이 아닌,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반가울 것 같다는 그 말의 느낌이 새롭고 다정해서 기억에 오래 남았다. 어쩌면 조금의 확신을 더 해주는 표현을 그동안 내가 참 듣고 싶었나 보다.

모두에게 다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지만. 적어도 일을 마치고 떠날 때, 조금은 아쉬워하고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응원의 말을 건넬 수 있으면 좋겠다.

너무 큰 욕심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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