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13.
이나, 로미, 제리 그리고 그

껄로 트레킹 첫째 날

by 오늘윤

2019 10월 26일



이나와 로미


계속 머리에 되내었다. '2일만 참으면 돼. 이제까지 혼자 여행해 왔지만 외로운적 없었잖아. 내가 투명인간이 아니라 저 사람들을 투명인간이라고 생각하면 돼'라고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분명 이틀을 같이 해야하는 저 사람들은 이미 하하 호호 즐겁기 그지 없고 거기에 끼지 못한 내가 이렇게 바로 옆에 서있는데


이제 트레킹의 시작인데 벌써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껄로에 온 뒤로 트레킹에 대해 몇번을 고심했었다. 쉽사리 내키지 않았던건 꼭 이런 미래를 내다 본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쉽게 내키지 않는건 결국 탈이 나는 법이구나.라는 뒤늦은 후회만 거듭 밀려왔다. 그 때 독일에서 온 이나가 다가와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러나 이미 아까 차에서 내 영어 발음을 못알아듣던 상황에 많이 위축되어 있던 상태였다.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이나는 어색해하며 내뱉는 내 영어를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미안해요. 내 영어가 엉망이라"

"아니에요. 괜찮아요. 당신의 영어 다 알아 들을 수 있어요. 잘 하고 있어요. 자신있게 말해요."


이나는 힘을 북돋아주며 부자연스러운 내 영어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여 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나 덕분에 내 엉망인 영어에도 조금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엉터리건 뭐건 이나 앞에서 조잘대며 뱉어대기 시작했다. 2일간 묵언수행을 예상하고 왔는데 초장부터 이나덕에 신나게 조잘거리고 있었다. 어느새 이나의 파트너 로미까지 합류해 그녀들과 합을 맞춰 이야기 하며 걸어나갔다.


북치는 꼬마


제리와 벨기에, 네덜란드 커플들은 이미 앞서 나가고 있어 어느새 우리 팀은 두 팀으로 나뉘어져 걸어가고 있었다. 중간 중간 제리가 농작물이나 소수민족에 대해 설명할 때 우릴 기다리느라 한번씩 합쳐지긴 했지만 결국은 걷다보면 두 팀으로 자연스럽게 나뉘어져 걷게 되었다. 사실 이나와 로미도 체력이 좋아서 원래대로라면 앞서 가는 팀에 발을 맞출 수 있었겠지만 그 날 따라 컨디션이 좋지 못했던 로미가 속도를 좀처럼 내지 못했고 결국 뒤떨어져 걷게 되었다. 중간 중간 이나는 앞팀에도 합류했다가 뒤에도 합류하기도 했지만 나는 쭉 로미 옆을 지켰다. 원래 속도도 앞 팀을 쫒아가기는 버거웠고 속도를 맞출 수 있다고 해도 이미 나는 이나, 로미 커플과 함께 있는 쪽이 마음이 편했다.

예쁜 이발소집 꼬마 아가씨들
할로를 목청이 터져라 외치며 인사하던 꼬마
트레킹 가이드 제리

이나가 앞으로 가면 제리가 뒤로와 말을 걸었다. 한류 때문에 한국에 관심이 많던 제리는 나를 무척 반가워 했었는데 한국인들도 미얀마 여행 중 껄로에서 트레킹 여행을 꽤 하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나를 유난히 반가워 하는지 궁금했는데 한국인들은 거의 정글킹을 오지 않는다고 했다. 제리의 말에 의하면 "아시아 사람들은 걷지 않아요. 택시를 타거나 차를 타고 이동해요."


뭐 제리의 말에 일부는 동의 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게 아마 한국인들은 이미 블로그에서 유명한 '엉클샘'을 주로 찾는 모양이었다. 이미 많은 후기로 입증이 된 곳이니 너도나도 엉클샘으로 향한듯 했고 반대로 정글킹은 산길을 걷는 험난한 코스탓에 유럽인이나 미국인들에게 유명한 에이전시였다. 결국 각자에게 많이 노출되고 유명한 트레킹 에이전시를 찾다보니 아까처럼 유럽연합 모임에 잘못 끼어든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아름다운 풍경

제리는 한국영화도 좋아하고 아이유도 좋아하며 한국노래도 많이 듣는다고 이야기 했다. 비의 닌자 어쌔씬을 재밌게 봤고, 아이유가 나온 호텔 델루나를 좋아한다며 나에게 호텔델루나 엔딩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했지만 반 밖에 보지 않은 탓에 제리의 반짝이는 기대감을 한 순간에 꺼뜨리고 말았다. 제리는 내가 보지 않은 드라마도 재밌게 보았다고 줄줄 읇어댔는데 안타깝게도 본 드라마가 없어서 제리의 이야기에 호응해주지 못해 미안했다. 다행히 나도 아이유 노래를 좋아해서 그 부분만큼은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제리는 반대로 한국에서 미얀마 영화는 유명한지 물어봤는데...한국에서는 미국영화와 한국영화만 인기가 있다고 애둘러 둘러댔다.


제리는 한류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일부러 내게 종종 일부러 많은 대화를 유도했는데 7명의 멤버중 유일하게 혼자 온 아시아인에 영어까지 못하는 내가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영어로 말하는데 부쩍 자신감이 없는 내게 자꾸 말해야 느는 법이라며 내 앞에서 부끄러울 필요없다며 이나처럼 내가 하는 영어 모두 잘 알아들을 수 있으니 자신있게 이야기 하라며 몇번이고 내 곁으로 와 대화를 시도했다.

반대로 한국어가 배우고 싶다며 몇마디의 한국어도 물어 옆에서 달달 외워대기도 했다.


그렇게 제리와 로미와 이나 덕에 정글킹 앞에서 느꼈던 소외감이나 투명인간이 된 기분은 확실히 벗어날 수 있었고 그들이 북돋아준 덕에 영어로 말하는 것에도 힘을 얻었다. 이번 미얀마 여행을 하면서 모든 상황에서 혼자 계속 부딪치다 보니 귀는 점점 트여 가는데 입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었다. 오히려 점점 입을 다물게 되고 있었는데 이나와 제리 덕에 문법에 꼭 들어맞지 않아도 알아서 듣겠거니 싶은 뻔뻔함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



험난한 트레킹


트레킹은 초반은 마을길을 걸어가며 뜨거운 햇빛만 빼면 꽤 괜찮은 것 같았지만 가면 갈 수록 길이 험해졌다. 키보다 큰 옥수수밭 사이길을 걸어야 할 때도 있었고 발이 푹푹 빠지는 진흙길, 산길, 가시가 무성한 길 등 왜 정글킹 에이전시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알만한 코스였다. 다행히 나는 머리부터 발끝 손끝까지 무장을 한 상태라 그런데로 괜찮았지만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트레킹하는 몇몇 멤버들에게는 쉽지 않은 길이었다. 다들 죄다 긁히고 상처나고 찔리고 햇빛에 살이 익어 화상을 입기도 하는 등 사고들이 잇따랐다. 가벼운 복장인 그들에 비해 등산용 장갑까지 낀 내가 유난스러운가 싶기도 했지만 내 선택이 나쁘진 않았던걸로 보인다. 그리고 기대하지 않았던 5000짯짜리 트래킹화가 꽤 자기 역할을 잘 해준 덕에 운동화로 다니기엔 미끄러운 길들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었다.


맛있었떤 점심식사 (고추 농사가 활발한 미얀마는 칠리소스를 많이 먹는다.)


정오가 되자 드디어 점심을 먹기 위해 한 민가에 들렀다. 정성스럽게 담아온 과일과 볶음 국수가 모두 맛있었다. 원래 여행 다닐 때 뭘 많이 먹는 편이 아닌데 이상하게 미얀마 여행때는 먹는 양도 늘고 뭘 먹어도 맛있는데다 많이 걸은 탓에 저 때도 내 앞에 있는 국수 한 그릇을 뚝딱 비웠는데 나머지 멤버들은 벨기에 남자 말고는 아무도 국수 한 그릇을 먹질 못했다. 거의 반은 남기고 있었다. 그렇다고 과일도 그닥 많이 먹지 않아서 국수도 혼자 싹 비우고 과일도 싹싹 비워 먹은 내가 왠지 식탐쟁이같이 느껴졌다.


점심을 먹고 한숨 돌리고 난 뒤 트레킹은 다시 시작되었다. 밥을 먹은 탓인지 오전보다 훨씬 발걸음에 힘이 붙었다. 하지만 그 만큼 길이 더 험해졌다. 대신 일기예보의 예상처럼 비가 오기는 커녕 하늘은 이 보다 더 화창할 수 없이 맑아서 눈을 두는 풍경마다 아름다웠다. 내 두 눈에 담기는 감동만큼 카메라에 반만이라도 담겨주면 좋겠지만 담겨지지 않았다. 결국 눈에 꼭꼭 담아 사진을 보며 몇배는 더 아름다웠었지라고 되내이는 수 밖에는,

걸음이 느리고 로미 컨디션이 나쁘기도 했지만 이나와 나는 종종 이 아름다운 풍경을 빠른 발걸음으로 휙하고 지나치기가 아쉬워 "아름다워"라는 말을 연신 뱉어내며 사진을 찍어댔다.




마음 같아서는 한참을 넋놓고 바라보다 가고 싶은 기분이지만 카메라로 찍으며 쫒아가기에도 이미 앞 선두팀과 우리의 간격은 꽤 벌어지고 있었다. 제리와 앞의 벨기에, 네덜란드 커플들은 20대 초중반들로 심지어 벨기에와 네덜란드는 동갑내기들이라 유독 쿵짝이 잘 맞아보였다. 그리고 체력도 똑같이 좋은지 발걸음에 힘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나와 로미도 나와 같은 30대이긴 했지만 결국 이 중에 제일 연장자는 나였다. 그리고 아마 로미가 아프지 않았다면 체력이 가장 떨어지는 사람도 나였을 것이다.


계속 로미 곁을 지키는 나에게 이나와 로미는 고맙다고 했지만 어찌보면 로미 덕에 나야말로 좀 더 느긋하게 풍경을 찍을 여유도 가질 수 있었고 속도를 맞추기 위해 힘들여 빨리 걷지 않아도 됐으니 고마워 해야할 사람은 로미가 아니라 나일 것이다.



외면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유럽연합에 완전히 녹아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유럽인들끼리 가지는 공통의 추억거리가 분명히 있었고 지리적 위치로 인해 공유되는 그들만의 공통 소재가 있었다. 그들만이 아는 유럽의 EDM음악, DJ, 문화 이야기 심지어 어릴적 부르던 동요이야기까지 나는 결코 알 수 없는 벽이 분명 존재했다.


이나와 로미, 제리가 내가 소외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주긴 했지만 벨기에, 네덜란드 커플과는 트레킹이 끝나는 날까지 서먹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네덜란드 남자와는 대화가 일절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대화할 기회가 없었다기 보다는 대화하지 않았다고 보는게 맞을 것 같다. 내가 영어가 부족해서 원활한 대화가 힘들어서 일거라고 생각한적도 있지만 이나, 로미, 제리를 제외한 나머지 세명과의 대화 수준이나 상황을 볼 때 그는 내게 의도적으로 말을 걸지 않고 있다고 느껴졌다. 내가 먼저 나서서 말을 걸어 보기도 했지만 단답형의 대답만을 한 뒤 뒤돌아 서는 모습에 더 이상 나도 먼저 말을 거는 것은 포기했다. 그냥 내 어수룩한 영어를 참고 들으면서까지 대화하고 싶지 않은가보지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간단하고 형식적인 아침,저녁 인사에서조차 내 인사만 외면 받았을 때는 확실히 내가 그에게 외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 할 수 밖에 없었다. 1박 2일 동안 그와 나눈 대화는 단 세마디였다. 첫 인사, 그의 다리가 긁혔을 때 괜찮은지 내가 물어봤을 때, 헤어질 때


확실한 건 내가 외면 받았다는 것이고 그 이유가 인종차별인건지, 성격이 마음에 안든건지, 영어를 못하기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내가 확실히 알 수 있는건 이나, 로미, 제리가 없었더라면 내 트레킹은 지옥같은 시간이었을 거라는 것 정도이다.


잠시 쉬어가기로 해요.
노래하는 제리
미얀마에서의 생명수 콜라, 미얀마에서 총 8캔이나 되는 생명수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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