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12.
시작부터 불안한 트레킹

껄로 트레킹 첫째 날

by 오늘윤

2019 10월 26일



티토하우스에서의 아침


미얀마에 온 지 8일째, 그리고 7번째 맞이하는 아침, 이토록 상쾌하고 안정감 있는 아침을 맞이해 본 적이 있던가? 처음이었다. 이렇게 푹~ 제대로 잠을 자 본 것도, 새들의 지저귐에 눈을 떠 본 것도 처음이었다. 밤 사이 또 비가 왔는지 밤새 열어뒀던 창문 너머 나뭇잎들이 촉촉이 젖어 진한 나무 냄새로 막 일어난 코 끝을 깨워댔다.

이곳은 천국일까? 묻고 싶어 질 만큼 완벽한 아침 기상이었다. 시간은 6시밖에 안됐는데 그 어느 때보다 가뿐하고 상쾌했다. 이 시간을 좀 더 누려볼까 싶어 멍하니 창 밖을 응시했다.

'아...... 트레킹 예약을 하지 말걸 그랬어.'

이런 꿈같은 시간을 오늘로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제 예약하고 온 트레킹 예약이 뒤늦은 후회로 밀려오기 시작했지만 이미 버스는 지나갔고 8시에 숙소 앞으로 픽업 오기로 한 정글킹의 차를 타려면 더 이상의 멍 타임은 무리였다.


배낭의 짐을 모두 꺼내 다음 날 도착할 인레(원래 지명은 냥쉐 그러나 인레 호수의 이름을 딴 인레로 더 많이 불린다.) 숙소로 미리 보내 놓을 짐들은 큰 배낭에 오늘 밤 사용할 간단한 짐들은 작은 배낭에 나누어 짐 정리를 시작했다. 하루 종일 트레킹을 해야 했기 때문에 많은 짐 보다는 세면도구와 물티슈, 갈아 을 윗 옷, 비가 온다는 기상 예보가 있었으므로 챙겨 온 우비 정도를 챙기기로 했다. 후기에서 보기로는 다들 씻지도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는 상황과 분위기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잘 때 입을 윗옷 정도는 챙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가방 세 개에 나눠 놨던 짐을 거의 큰 배낭 하나에 몰아 넣으려니 가방이 시한폭탄처럼 터지기 직전이지만 꾸역꾸역 욱여넣고 레인커버를 씌우고 고정 벨트까지 야무지게 꽁꽁 잠갔다. 짐 싸기에 너무 열중했던 걸까? 시간이 어느새 7시 반을 넘어서고 있는 걸 보고 어제 사 왔던 파인애플을 들고 후다닥 식당으로 내려갔다. 어제 내가 대기했던 식당은 티토하우스 1 식당이었고 내가 묵고 있는 숙소는 티토하우스2로 건물 1층에 작은 식당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티토하우스2에 묵고 있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식사를 하게 되어 있었다. 나는 칼을 빌려 어제 사온 파인애플을 깎아 옆방에 묵고 있던 커플들에게도 한 접시 권했는데... 맛이... 왜 이렇지? 동남아 과일천국 아니었던가? 어째 우리 동네 슈퍼 3000원짜리 파인애플이 훨씬 맛있는 거 같은데... 이렇게 별맛 없을 줄 알았더라면 나눠주는 게 아니었는데 후회가 밀려오는 맛이었다. 숙소 직원이 건네준 도시락은 빵, 치즈, 볶음밥, 팬케이크로 구성된 3단짜리 도시락이었는데 볶음밥이 입에 제일 잘 맞았다.


티토하우스 3단 도시락 조식

시간도 없는데 파인애플 깎느라 시간을 허비한 탓에 나머지 조식은 정말 후다닥 입에 욱여넣듯 집어넣고 방에서 가방을 챙겨 티토 아저씨가 계신 티토하우스1 식당으로 찾아가 숙박비 계산하고 이미 와 있던 정글킹의 픽업 차량에 바쁘게 몸을 실었다. 너무너무 감사했다고 이곳은 천국 같은 숙소였다고 꼭 다음에 또 올 테니 또 보자고 전하며 내 친구들이 이 숙소로 오늘이나 내일쯤 올 테니 잘 부탁한다는 말까지 시간이 촉박한 와중에도 전할 말은 빠짐없이 전달하고 나의 힐링하우스 티토하우스를 떠나왔다.



투명인간


픽업차는 바간에서 버스터미널까지 타고 갔던 픽업차량과 같은 스타일의 트럭으로 나를 시작으로 내려가는 중에 6명 정도의 사람을 추가로 태워 정글킹 앞까지 우리를 실어다 날랐다. 아직 온 사람은 5,6명뿐, 어색함과 뻘쭘함으로 온몸 구석구석에 불편함이 혈관을 타고 빠르게 전달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고 대략 세어봐도 20명은 넘는 사람이 모인 것 같은데 흑인 여성 1명, 아시아인(나)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백인이었다. 나라도 제각각, 태어나 이렇게 많은 국가의 사람들 사이에 나 혼자 껴있어 본 적이 있던가?

아무리 기억을 뒤져보아도 이렇게 10개국 이상의 사람들 사이에 섞여본 적은 없다. 공항을 제외하곤

주를 이루는 것은 90% 이상이 유럽인들이었다.


30명이 넘는 유럽인들 사이에 홀로 낀 영어도 못하는 아시아인은 한 구석의 의자에 앉아 EU연합 모임에 잘못 찾아온 불청객이 된 기분으로 투명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 투명인간 그 때의 나를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서로서로 처음 만나는 걸로 보이는 사이들이었으나 그들은 비쥬를 하거나 인사를 하거나 스몰 톡을 하거나 다들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고 건넸다. 단 나는 제외였다. 마치 그들 눈에 나라는 존재는 있지도 않다는 듯이 바로 옆에 있는 나는 그들의 인사 시간에 제외되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인사를 나누고 어디서 왔냐는 간단한 인사를 돌아가며 건넬 때조차 사이에 낀 나만 쏙 빼놓은 채 넘어가는 모습을 보며 이 트레킹을 잘 마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 볼까도 했으나 눈 조차 맞춰지는 사람이 없었다. 유일하게 먼저 인사를 건넨 사람은 호주에서 혼자 왔다는 젊은 여성과 어제 트레킹 예약할 때 보아서 구면이던 흑인 여성이었다.


간절하게 바랐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좋으니 한 명 정도의 아시아인이 더 오게 해 달라고, 그러면 이 숨 막힐듯한 어색함과 투명인간이 된 듯한 소외감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내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러나 그런 바람은 깡그리 무시되고 더 많은 유럽인들만이 찾아와 점점 더 투명인간이 된 기분에 익숙해져 갈 뿐이었다. 눈물이 왈칵 날 것만 같고 미얀마에 온 뒤로 처음으로 외롭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여태 아시아를 벗어나 여행을 해본 적도 없고 서양 외국인들과 몇 번 어울려 본 적도 없는 사람이라 그들의 행동이 그저 당황스러웠고 왜 그러는 건지 이유를 쉽게 찾지 못했다. 설마 이게 인종차별인 걸까? 아니야 유일한 아시아인이라 그들도 나처럼 조심스러운 걸 거야,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지 않아서 그런 걸 거야. 별별 이유를 다 갖다 붙이며 그 상황을 스스로 납득해 보려고 애를 썼지만 아직도 정답은 모르겠다.

2일간 함께 할 5000짯 트레킹화

1시간 즈음 되는 대기시간이 지옥 같았다. 당장 취소하고 그냥 티토하우스로 돌아가 다시 1박을 연장하고 인레애 가는 버스를 예약해달라고 하고 싶었다. 이 좋은 껄로를 두고 왜 이런 지옥에 나 스스로 뛰어들었나 후회가 밀려왔다. 사람들이 얼추 도착하자 가방을 인레 숙소로 보내기 위해 예약한 숙소가 적힌 태그를 가방에 달기 위해 불려 나갔을 때, 우리 팀 가이드 제리와 인사를 나눴다.


"반가워요. 제리라고 해요."

"잘 부탁해요. 윤오라고 해요."


내가 적어 놓은 예약자 목록을 보던 제리는 갑자기 무척 크고 흥분된 소리로 나를 찾았다.


"한국에서 왔어요?"

"네? 네"


가방에 태그를 달다 갑자기 커진 제리의 목소리에 놀라 뒤돌아 보았더니 제리의 목소리에 투명인간 봉인이 풀리기라도 한 걸까?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두 눈이 나를 향해 있었다. 갑자기 깨진 봉인에 놀라 어쩔 줄 모르고 있자니 제리는 나를 대신해 한국 영화와 한국 음악이 얼마나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지를 설명하며 한국 사람을 만나게 되어서 무척 기쁘다며 흥분하고 있었다. 한국 예술, 문화, 음악에 기여한 건 없지만 그 순간 그저 한류가 너무 고마운 순간이었다. 1박 2일 동안 투명인간인 건가 싶었지만 그래도 한 명 정도는 호의를 가지고 대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약간은 안도되었다.


9시가 넘어서자 2박 3일 트레킹 팀이 두 팀으로 나뉘어 먼저 출발 길에 올랐다. 유일하게 인사를 먼저 건네주던 두 사람도 2박 3일 팀이었다. 우리 1박 2일 팀은 나를 포함해 총 7명의 사람들로 네덜란드 커플 2명, 벨기에 커플 2명, 독일 커플 2명, 한국인 1명으로 그러니까 유럽연합 커플팀에 아시아인 여자 싱글 한 명이 낀 정말 최악의 조합이었다.


'아아~ 하늘이시여, 오늘 저에게 주신 꿀잠은 이런 시련을 앞둔 사람에게 주는 예비 보상 같은 것이었나요?'


픽업차를 타고 이동 중


출발


마음은 트레킹이고 예약비고 다 집어치우고 도망가라고 종용했지만 몸은 순순히 출발지까지 태워다 줄 차량에 오르고 있었다. 2박 3일 팀은 에이전시 앞에서부터 걸어가는 출발이고 1박 2일 팀은 1/3 지점까지는 차를 타고 가고 이동한다. 차에 올라타자 서로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커플은 누가 보더라도 학교의 최고 인기 커플 같은 재질의 사람들로 유머와 농담으로 어느 순간 분위기를 주도하는 위치에 올라가 있었다. 벨기에 커플은 나서기보다는 대세를 따르고 그 분위기에 맞춰 흘러가는 사람들이었다. 독일 커플은 여성 커플들로 사교성이 좋았지만 분위기를 특별히 주도하려고 하진 않는 나머지 두 커플과는 또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었다.


차에 올라타 인사를 마치자마자 여섯은 이미 신나 있었다. 서로에 나라에 가봤던 이야기나 서로 언어를 배웠던 이야기 등으로 이미 그들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고 유럽에선 그 이야기가 웃긴 이야기인지 자기들끼리 던지고 여섯 명이 깔깔대는 농담에도 그 이야기의 어느 포인트에 웃어야 하는지 감도 안 잡히는 아시아인은 억지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마냥 입을 닫고 있긴 그래서 몇 마디를 먼저 꺼내보기도 했지만 내 영어 발음을 못알아겠는지 "What?"이라고 몇 번 되묻는 통에 그 마저도 포기하고 '2일간 나는 투명인간이다. 2일만 버티자.'라고 되뇌었다. 그래 2일만 버티면 된다. 2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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