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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09. 2020

내 인생에 방점(傍點)을 찍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후에 기록된 우리의 옛 문헌에서는 오늘날과 달리 글자 왼쪽에 작은 점들이 찍혀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곁에 찍었다고 해서 ‘방점(傍點)’이라고 불리는 점들인데 우리 조상들은 이 방점을 사용하여 글자의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표시하였다.


지금도 간혹 느낄 수 있지만 옛 우리말에도 음의 높낮이 차이를 나타내는 성조(聲調)가 있었다.

중국어를 공부하다 보면 대번에 알 수 있듯이 같은 글자라도 성조에 따라서 그 의미가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우리말에도 4성(四聲)의 네 가지 성조가 있었다.     


4성 중 방점이 없으면 평성(平聲)이라 했고 낮은 소리를 내게 했다. 방점이 하나이면 거성(去聲)으로서 높은 소리를 내며 방점이 둘이면 상성(上聲)으로서 낮은음에서 높은음으로 올라가는 긴소리이다. 상성은 오늘날에 와서는 길게 발음하는 장음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4성 중 마지막인 입성(入聲)은 ‘ㄱ, ㄷ, ㅂ, ㅅ’으로 끝나는 말로서 급하게 발음하는 소리라는 뜻인데 그 자체가 높낮이를 나타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입성은 모든 방점을 찍을 수 있어서 방점에 따라 평성, 거성, 상성 셋 중의 한 성조를 취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각 글자에 찍힌 방점 숫자에 따라서 음의 높낮이를 달리하여 발음하다 보니 글을 읽는 것이 마치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기도 하였다.

자연히 방점 때문에 글자의 의미도 더욱 풍성해졌다.     


그러니 우리의 옛 조상들은 글을 읽을 때 매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방점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면 잘못 읽게 되는 것이고 잘못 읽으면 의미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다.

글을 읽을 때 못지않게 글을 쓸 때에도 글자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여서 방점을 찍어야 했다.

그래야 글 쓰는 사람의 의도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방점을 찍는 일이 이렇게 중요한 일이다 보니 어느덧 방점을 찍는 행위는 단순하게 글자 옆에다가 점을 찍는다는 의미를 뛰어넘게 되었다.

그래서 어디에 ‘방점을 찍는다’라고 말하면 그곳에 ‘조심해서 관심을 집중한다’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우리 조상들은 정성스럽게 먹을 갈고 붓을 들어 글을 쓴 다음에 그 글자 왼쪽에 방점을 찍으면 한 글자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방점을 찍은 이후에 다시 붓을 들어 그다음 글자를 써내려갔다.

방점은 한 글자를 끝마치는 마지막 작업이었으며 또 다른 글자를 쓰기 위한 시작이었다.

지금이야 지우개도 있고 수정 테이프가 있어서 글을 잘못 쓰면 지울 수도 있고, 수정테이프를 찌익 붙여서 그 위에 다시 쓰면 된다.

하지만 옛 어른들은 방점 하나 잘못 찍으면 그 점을 지울 수가 없어서 비싸고 아까운 종이를 버려야 했고, 그동안 써내려온 글들을 다시 새로 써야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때는 관심을 집중해서 방점을 잘 찍어야 했다.     


우리의 삶에도 인생길 굽이굽이 맺고 끊어야 하는 방점이 있다.

빨리 갈 때가 있고 천천히 가야 할 때가 있다. 높이 바라볼 때도 있고 낮은 곳을 굽어볼 때도 있다.

매 순간 주의를 집중해서 삶의 방점을 살펴봐야 한다.

내 인생의 방점을 잘 찍는다면 아름다운 화음이 어우러진 인생의 찬가를 부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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