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오랫동안 커피를 안 마시고 지낸 적이 얼마만인가?
지난 월요일에 커피 2잔을 마신 후 5일 동안 커피를 안 마셨다.
하루에 서너 잔은 보통이요 대여섯 잔도 마시며 지냈던 나로서는 이렇게 오랫동안 커피를 마시지 않고 지낸다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이다.
국민학교 5학년 때 처음 커피 맛을 본 이후 커피는 자연스레 나의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어른들 흉내 내면서 홀짝거렸던 커피가 어느덧 나의 기호품이 되었다.
고등학생 시절 학교 도서관 앞에는 커피 자판기 한 대가 서 있었다.
블랙커피, 크림커피, 밀크커피, 유자차, 율무차의 메뉴가 있었는데 나는 늘 밀크커피였다.
밀크커피 한 잔 뽑아서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청춘의 시절을 보냈다.
대학시절에는 강의 중간중간마다 커피 한 잔이 기본이었다.
학교 앞 커피숍에서는 커피에 계란을 얹어서 팔기도 했었다.
빈속에 커피를 마시지 말라고 그랬을 것이다.
멀리 여행이라도 떠날 때면 으레 봉지커피 한 움큼과 스테인리스 컵을 챙겨서 다녔다.
뜨거운 물만 얻으면 세상 어디서든 나만의 카페가 되었다.
다방이 커피숍으로 간판을 바꾸고 다시 카페로 이름을 고칠 때쯤 되자 나도 나만의 커피를 정하였다.
급한 성격 때문일까?
빨리 내리는 커피, 에스프레소였다.
쪼끄마한 잔에 앙증맞게 나오는 커피가 내 눈을 호사스럽게 했다.
그것 한 잔 들고 다리 꼬고 앉아서 홀짝거리는 모습이 내가 생각해도 멋있어 보였다.
무엇보다도 에스프레소 커피가 제일 값이 쌌다.
지금도 그렇다.
남들은 에스프레소가 독해서 어떻게 마시냐고 하지만 나는 커피는 써야 제맛이라며 일부러 그것을 골랐다.
인생도 쓰고 사랑도 쓴데 커피도 써야 격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커피는 쓴맛에 마시는 것 아니던가?
쓴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에스프레소다.
더블로.
샷 추가로.
그렇게 나와 에스프레소는 20년 지기가 되었다.
가끔 여럿이 카페에 앉아서 주문을 할 때면 나만 손해 보는 것 같다.
남들은 이 메뉴 저 메뉴 종류별로 다양하게 마신다.
그 와중에도 나는 에스프레소 도피오에 샷추가이다.
아무리 샷을 추가한다고 해도 남들보다 커피의 양이 적다.
남들은 내가 마시는 커피보다 1.5배 더 비싼 음료들을 시킨다.
그래도 나는 에스프레소를 고집한다.
커피를 마시러 왔으면 커피를 마셔야 한다.
다른 음료를 마시는 것은 카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좋은 카페는 좋은 커피를 파는 카페라는 게 커피에 대한 내 생각들이다.
한국인의 커피는 아이스아메리카노라고 하는 이들도 있고 드립커피가 대세라고 하는 이들도 있고, 더치커피가 몸에 좋다는 이들도 있고 루왁커피의 향이 제일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에스프레소다.
나중에 사람들이 나를 생각할 때 ‘아 그 사람은 에스프레소였지!’라는 한 줄로 기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리스타 자격증이 없어도, 커피를 식별하는 특별한 미각이 있는 것이 아니어도 이 정도면 나도 커피 예찬론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지난 5일 동안 내가 커피를 한 잔도 안 마시고 지냈다.
커피를 찾지도 않았다.
논산훈련소에서 신병교육을 받을 때도 수통에 몰래 커피를 넣고 30킬로가 넘는 행군을 했던 사람이 나란 사람이다.
그런 내가 5일 동안 커피를 끊었다.
끊으려고 노력했으면 못 끊었을 것이다.
그냥 끊어졌다.
커피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게 된다.
커피처럼 내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없으면 삶이 유지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있다.
그것만은 꼭 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 없이도 삶은 살아진다.
인생은 흘러간다.
그것이 없어도 아무 문제도 없다.
커피처럼 그것도 하나의 기호품일 수 있다.
커피를 안 마시고도 살아지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