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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26. 2023

단풍에게서 인생을 배운다

  

10월 둘째 주간에 설악산을 붉게 물들였던 단풍이 이제는 경기도 남부에 있는 우리 동네까지 내려왔다. 

울긋불긋 단풍 대궐을 이루었다.

가로수로 심긴 은행나무도 노랗게 물들어 있다. 

바람에 후드득 떨어지는 낙엽도 세상을 불그레하게 하고 노랗게 하는 데 한몫을 한다. 

노란 은행잎을 보는 순간 입가에서 김용택 시인의 <그 여자네 집>이란 시가 터져 나온다. 

긴 시여서 다 외우지는 못한다. 

제목만 외우고 있다. 

느낌만 간직하고 있다. 

‘그 여자네 집’이라는 소리만 울리고 있다. 

그 느낌과 울림으로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시를 찾아서 한번씩 읊어본다.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 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웠던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속에 깜박깜박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오는 집

......

네 집”




노란 은행잎과 빨간 단풍잎은 가을의 상징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나 이런 정취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 년 내내 기온의 변화가 거의 없는 지역에서는 단풍을 볼 수가 없다. 

그러니까 적도 지역이나 남극과 북극 지역 같은 데서는 단풍을 구경할 수가 없다. 

단풍은 가을철에 낮과 밤의 온도 차이가 심한 곳에서만 나타난다. 

아시아에서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아메리카에서는 북아메리카 동북구 지역과 남아메리카의 일부 지역, 유럽에서는 남서부 지역 등지에서 단풍을 구경할 수 있다. 

우리에게 일상적인 일이라고 해서 다른 나라에서도 일상적인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단풍은 하늘이 우리에게 내려주신 엄청난 선물이다.




사실 단풍이 드는 이유는 나무들이 춥고 건조한 겨울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이제 곧 겨울이 다가오면 나무들은 생존에 필요한 수분이 부족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 자기가 간직하고 있는 수분이라도 뺏기지 않으려고 한다. 

수분을 뺏기지 않으려고 잎과 잎자루 사이의 조직을 딱딱하고 굳어지게 만들어서 줄기에서 잎으로 지나는 수분의 통로를 막아버린다. 

건조한 겨울을 지내기 위해서 나무가 스스로 수분의 함량을 낮추는 것이다. 

봄과 여름에는 나뭇잎에 수분이 잘 공급된다. 

그러면 나뭇잎에 있는 엽록소가 햇빛을 받아 광합성작용을 하게 된다. 

그 영향으로 나무가 푸르게 되고 성장한다. 하지만 가을이 깊어지면 이런 일련의 과정이 멈춘다.




수분의 통로가 끊긴 나뭇잎에서는 더 이상 엽록소가 광합성작용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엽록소 뒤에 가려져 있었던 다른 빛깔의 물질들이 앞으로 튀어나온다. 

그 색깔들이 나뭇잎을 빨갛고 노랗게 물들여서 단풍이 된다. 

그러니까 단풍은 나뭇잎 스스로가 수분의 통로를 차단하여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나무를 살리기 위해서 나뭇잎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자신은 말라비틀어지면서 땅에 떨어지지만 나무만큼은 살리고 싶은 게 단풍의 마음이다. 

단풍은 나를 죽이면서까지도 너를 살리고 우리를 살리고자 하는 고귀한 존재이다.




뿐만 아니라 단풍의 색깔을 빨갛게 만드는 안토시아닌이라는 색소는 단풍과 함께 땅에 떨어진 후 흙속에 있는 뿌리로 스며든다. 

그렇게 스며든 안토시아닌은 뿌리를 포근하게 감싸주는데 그렇게 되면 해충이 나무의 뿌리를 공격할 수가 없게 된다. 

이처럼 단풍은 죽어서까지도 나무를 보호하고 살린다. 

이렇게까지 이타적인 존재가 있을까?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하는 인간은 나 살려고 너를 죽이는데 단풍은 너 살라고 나를 죽인다. 

어쩌면 단풍이 인간보다 더 고귀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단풍만도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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