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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Dec 30. 2023

이 겨울의 주인공은 바로 눈이다!


겨울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창밖이 유달리 밝은 날이 있었다.

그런 날에는 이불을 박차고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일어났다.

“눈이닷!” 

예상은 늘 적중했다.

마당을 하얗게 덮은 눈이 나를 반겼다.

분명히 간밤에 잠이 들 때까지만 해도 눈 구경을 못했는데 내가 잠든 사이에 소리 소문 없이 눈이 내렸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몰래 내려와서는 하얀 눈꽃송이를 던져주고 간 줄 알았다.

아무도 밟아보지 않는 하얀 눈 도화지에 내 발자국을 찍어도 보았다.

눈밭에 벌러덩 드러누워 큰 대 자를 그려보기도 하였다.

뽀드득뽀드득거리는 눈 밟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눈 오는 시간이 새벽이 아니라 낮이어도 좋았다.

한창 지루한 수업이 이어지는 날이었다.

졸립고도 따분하기만 한 시간이었는데 교실 창밖으로 눈발이 보였다.

“눈이닷!” 

그 순간 선생님도 동기들도 모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잠자던 놈들도 모두 깨어나 창가로 달려갔다.




반백년 살아온 인생치고 눈에 대한 추억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하늘을 향해 입을 활짝 벌려 눈을 받아먹고,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고, 친구들과 편을 갈라 눈싸움을 하고, 눈밭에서 눈썰매를 탔다.

가난한 시골 언덕에는 비료포대를 손에 든 아이들로 바글거렸다.

비료포대에 눈을 집어넣으면 언덕을 날아다니는 훌륭한 썰매가 되었다.

썰매타기가 지루하면 연을 날렸고 팽이치기를 했다.

장난감 하나 없었어도 날이 저물어 어머니가 부를 때까지 놀거리는 끝이 나지 않았다.

그때 그렇게 함께 놀았던 친구들은 지금 다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너무 오랫동안 불러보지 않은 이름이어서 이름조차 가물거린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떠오르는 잔상들이다.

눈이 불러다 주는 추억이다.

오늘도 그 추억을 떠올려 보라며 벌써 몇 시간째 눈이 내린다.

길 걷는 사람들은 불편해서 투덜거리지만 길 보는 나는 즐겁기만 하다.




미국 시인 로버트 프루스트는 눈이 쌓여 가지가 축 늘어진 자작나무를 보면 어린아이가 그 가지를 흔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작나무에 올라서 가지를 손에 잡고 마치 타잔처럼 땅으로 뛰어내리던 어린아이를 떠올렸다.

눈 내린 날에는 그 모습이 더욱 멋있었을 것이다.

하얀색 자작나무 가지에 기어 올라가서 적당한 가지를 고른다.

그 가지에 엉금엉금 다가가서 가지 끝을 잡고 뛰어내린다.

가지가 부러지기 직전에, 가지가 땅에 닿으려는 순간에 발이 먼저 땅에 닿아야 한다.

순간적으로 가지에서 손을 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아주 멋진 착지가 된다.

자작나무 가지는 출렁이고 아이는 숨 가쁜 즐거움을 얻는다.

시인은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인생은 자작나무를 타는 것 같다고 하면서 말이다.

자작나무 타기는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눈 오는 날이면 그 시절이 생각나는 것이다.




눈 내리는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가게 주인들이 나와서 염화칼슘을 뿌리고 있다.

덕분에 가게 앞은 눈이 내리는 순간 녹아버린다.

그러잖아도 영상의 기온이어서 눈도 별로 쌓일 것 같지 않다.

눈 내린 날의 추억과 낭만을 즐기기보다 당장 오늘의 장사가 더 급선무인 심정을 이해는 한다.

별로 반겨주는 이가 없어서인지 요즘은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뿌려주는 눈이라고 하지 않고 ‘그놈의 눈’이라고 한다.

‘지긋지긋한 눈’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을 하니까 눈도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것 같다.

예전에는 며칠 동안 내려서 한강물도 얼게 했다는 눈인데 요즘은 몰래 변소간에 들렀다가 도망치는 도둑처럼 후딱 내리고 얼른 사라진다.

그래서 요 몇 년 동안 눈 구경을 별로 해본 적이 없다.

오늘은 눈이 무슨 작심을 했나 보다.

벌써 몇 시간째 내리고 있다.

이 겨울의 주인공은 바로 눈이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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