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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pr 03. 2024

사람이 희망이다


가끔 산에 올라가는 것을 좋아한다.

산에는 혼자 가지 말라고들 하는데 나는 남들과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아서 홀로 산을 간다.

산길은 외길이 아니다.

가다 보면 갈림길이 나오고 또 나온다.

갈림길 앞에 다다르면 늘 고민을 한다.

전에 갔던 길로 갈까 아니면 새로운 길로 갈까? 잘 아는 길, 자주 다닌 길로만 가면 밋밋하다.

그래서 이전에 걸어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택하기도 한다.

한참을 걸어도 아직 숲속을 헤어나오지 못했을 때 불쑥 두려움이 일기도 한다.

혹시 내가 길을 잃은 것은 아닌지 자꾸 마음속으로 물어본다.

전에 한 번 그런 적이 있다.

새로운 길을 택했는데 숲속에서 길을 잃었다.

길인 줄 알았는데 길이 아니었다.

덜컥 겁이 났다.

오후의 햇살은 급히 떨어지고 있었다.

어둡기 전에 길을 찾아야 한다는 조급증이 일었다.

한 시간이었을까 두 시간이었을까? 숲을 헤매고 헤매다가 겨우 출발지로 돌아왔었다.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 두려운 마음이 드는 가장 큰 이유는 나 혼자만 이곳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런 인기척을 느낄 수 없을 때, 그때가 가장 두렵다.

사람들 부대끼며 살아가는 세상을 떠나고 싶어서 산에 왔다.

사람들이 없어서, 한적해서 산이 좋았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였다.

사람이 안 보이니까 사람이 보고 싶었다.

한적하니까 사람이 그리웠다.

인기척을 느낄 수 없게 되니까 어디 사람 소리가 들리지 않나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사람 그림자만이라도 보고 싶었고 사람 말소리만이라도 듣고 싶었다.

나에게 사람이 그런 존재였다.

함께 부대끼고 있을 때는 귀찮고 불편하기도 하지만 떨어져 홀로 있을 때는 한없이 그리운 존재가 사람이다.

산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은 사람을 부른다.

“거기 누구 없나요?” 그때 저쪽에서 “여기 사람이 있어요!”라고 맞받아친다면 ‘이제 살았다!’ 안도감을 느낀다.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사람의 흔적만 보고서도 반가운 마음이 든다.

나뭇가지에 빨간색, 노란색 리본이 묶여 있는 것을 볼 때가 그렇다.

어느 산악회에서 붙여 놓고 갔을 텐데 마치 나에게 이 리본을 따라서 오라고 부르는 것 같다.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게 아니었다.

나보다 앞서 이곳을 지나간 사람이 있었다.

그 흔적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길인 듯 길이 아닌 듯 보였지만 그 길도 하나의 산길이었다.

그 길을 따라가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길을 따라가면 산 정상에도 이르게 될 것이고 그 길을 따라가면 산아래 마을에도 이르게 될 것이다.

나의 마음이 평안해지고 나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등에 짊어졌던 가방 속 짐이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흔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에게 힘을 주었다.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사람이 희망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외쳤는지 모른다.

그들도 아마 산속에서 길을 잃었던 경험이 있었나 보다.

그러지 않고서야 사람이 희망이라는 말이 입에서 쉽게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눈을 들어서 내가 걸어가는 길을 다시 보자.

나 혼자서 걸어가는 외로운 길일 줄 알았다.

아무도 걸어가지 않는 길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걷는 길 옆에서 누군가 또 걸어가고 있었다.

길만 보느라고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고 나는 나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 사람도 나를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의 얼굴에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기가 길을 잃은 줄 알았나 보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그 사람도 하고 있었나 보다.

그 사람과 눈이 마주친 순간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서로 터져 나왔다.

반가웠다.

오래된 친구 같았다.

그 사람에게서 희망을 보았다.

사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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