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Nov 04. 2020

약을 먹을 수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아침식사 후 조금 시간이 지나면 알약 하나에 캡슐 두 알을 먹는다.

벌써 1년 동안 복용하고 있다.

“이제는 약을 드셔야 합니다.”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가슴에 ‘쿵’하는 소리가 났었다.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고 체력이 좋다고 자부했었다.

해마다 건강검진을 받으면서도 나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몸이었는데 몇 년 전부터 여러 부위의 검사 수치가 맘에 안 들게 나오기 시작했다.

의사선생님은 “운동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식이요법 같은 거 신경 쓰지 말고 무조건 운동하셔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앞에서 자신 있게 대답을 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출퇴근하면서 걸었다는 핑계로 운동도 건너뛰기 일쑤였다.

그에 반해서 점심 저녁은 꼬박꼬박 밖에서 해결했으니 몸에 안 좋은 것만 잔뜩 쌓아왔던 것이다.




아버지가 쉰셋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을 때 나는 아버지를 앗아간 고혈압과 뇌졸중, 뇌출혈에 대해서 상당한 위기감을 가졌었다.

돼지고기, 닭고기, 라면, 밀가루 같은 것은 가능하면 멀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중에서 한 가지씩은 매일 섭취하며 살고 있다.

동료들과 함께 점심과 저녁을 해결하는 일이 많다 보니 내 마음대로 식단을 정할 수가 없다.

도시생활에서 직장인들이 같이 어울려 먹는 음식이 대충 거기서 거기다.

그래서 현대 도시인들은 대부분 비슷한 질병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팔팔했던 청춘 때에는 몸이 안 좋은 것들과 싸워서 이겨냈다.

하지만 나이가 더해가면서 몸의 저항력이 서서히 약해졌다. 나도 느끼는데 건강검진 수치들이 그걸 모를 리 없다.

정확하게 집어낸다.




나는 흰머리가 안 생길 줄 알았다.

머리숱이 많아서 평생 덥수룩할 줄 알았다.

눈의 시력은 2.0을 유지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중 하나도 내 생각대로 된 게 없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고스란히 내 몸이 증명해내고 있다.

이런 생각들을 이어가다 보면 마음이 서글퍼진다.


서유석 선생이 불렀던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노래가 흥얼거려지는 것은 딱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예전에 서유석 선생과 같은 교회를 다닌 적이 있었다.

어릴 적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모습과 나이가 들어서 실제로 악수를 하면서 마주한 얼굴은 같은 듯 달랐다.

세월이 그만큼 지났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고 인생이다.

그래도 가급적 천천히 이 젊음이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약을 복용한다.




1년 전에는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사실에 기분이 많이 상했다.

의사선생님의 처방이니 안 따를 수가 없어서 마지못해 수긍했다.

캡슐을 하루에 두 알 복용해야 하는데 몇 달 동안 한 알만 복용한 적도 있었다.

내가 깜빡 잊고 실수한 거다.

어쨌든 약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

최근의 검사 결과를 보면 안 좋았던 부분의 수치들이 정상궤도에 진입했다.

전에는 몸에 피로감도 많이 느꼈는데 요즘은 그런 날이 별로 없다.

이래서 사람들이 ‘약빨’이라고 말하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이런 약을 개발한 제약회사가 있어서 감사하고,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사회 여건이 조성된 것에 감사하고, 좋은 약을 처방해준 의사선생님이 있어서 감사하고, 잘 조제해준 약사선생님이 있어서 감사하다.

앞으로 내가 복용해야 할 약들은 계속 늘어나겠지만 그 약들 덕분에 오래도록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테니 다 감사할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아버지를 닮았고 아들은 나를 닮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