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팠다.
많이 아팠다.
이렇게 아파본 적이 얼마였던가?
나도 이렇게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시작은 아주 사소했다.
내 추측이 맞다면 상한 음식을 먹은 게 발단이다.
설렁탕이었다.
며칠 전에 내가 사 온 설렁탕.
우리 동네에서 유명한 설렁탕집에서 사 왔다.
2인분을 사 왔는데 막상 집에서 먹을 때는 네 사람이 먹어도 충분할 만큼의 양을 주는 집이다.
식구들은 설렁탕을 안 먹는다고 해서 내가 거의 다 먹었다.
마지막 한 그릇쯤 남았는데 하루 전날 끓여놓은 상태였다.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냄새가 노릿했다.
설렁탕 냄새야 원래 노릿하니까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끓이다 보니 노릿한 냄새가 사라졌다.
거기에다가 라면 사리 하나 집어넣었다.
그리고 맛있게 먹었다.
국물까지 후루룩 삼켰다.
딱 거기까지는 좋았다.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었을 때 배가 요동을 쳤다.
화장실을 몇 번 들락거리며 속엣것을 다 내보냈다.
속을 비운 후로는 괜찮을 줄 알았다.
내 위장은 워낙 튼튼해서 유통기한이 지난 요플레 같은 것을 먹어도 끄떡없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가뿐하게 회복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하루 종일 배가 안 좋았다.
식사를 조절했다.
굶으면 속이 깨끗하게 비워져서 나아질 줄 알았다.
그래서 최대한 먹는 것을 줄였다.
다시 하루가 지났다.
기력은 조금 약해졌지만 몸은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날도 최대한 음식을 조심하려고 했다.
또 하루가 지났다.
하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좋아진 듯하면서도 조금 있으면 속이 또 뒤틀렸다.
며칠째 소화제를 복용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또 하루를 지났을 때는 더 이상 참지 못하여 병원에 들렀다.
의사는 며칠째 이런 증상을 겪고 있냐고 물었다.
나는 이삼일 되었다고 했다.
사실은 나흘째인데 나흘이라고 말하면 그동안 뭐 했냐며 야단치고 나를 무식한 원시인 취급할 것만 같았다.
의사가 나에게 혹시 회 같은 것을 먹었냐고 물었다.
나는 즉각 아니라고 했다.
사실은 의사를 만나기 전에 속이 너무 답답해서 물회를 한 그릇 먹고 온 상태였다.
배탈을 앓고 있던 요 며칠 동안 통 입맛이 없었고 먹는 양도 극히 적었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게 점심시간에 머릿속에서 ‘물회’, ‘물회’라는 글자가 춤을 추었다.
물회로 유명한 집을 찾아가서 메뉴를 보았는데 평상시에는 엄두를 내지 않았던 모둠물회를 주문했다.
얼마나 먹을 수 있을까 했는데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거기다가 공기밥까지.
하지만 의사에게는 물회를 먹었다고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을 했다가는 배탈 난 사람이 왜 물회를 먹었냐는 잔소리를 들을 게 뻔했다.
청진기로 내 배를 훑어본 의사는 술 마시지 말고, 기름진 것, 차가운 것, 날 것들을 먹지 말라고 하면서 약 처방을 내주었다.
소화제와 위경련을 억제하는 약들을 3일 치 받았다.
하루 동안 약을 복용했는데 차도가 없었다.
이틀째도 마찬가지였다.
삼일째 되니까 조금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는 기분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몸이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오늘 4일째는 약을 복용하지 않았는데 괜찮다.
아주 미세한 부글거림이 가끔 있는 정도이다.
이제야 다 나은 것 같다.
꼬박 1주일 걸렸다.
아, 그때, 1주일 전에, 설렁탕을 먹을까 말까 할 때 아내가 그냥 버리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그걸 못했다.
설렁탕의 뽀얀 국물과 냄비 밑바닥에 깔린 왕건이들을 그냥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한 끼 맛있게 먹은 것치고는 그 대가가 너무 크다.
병원비와 약값은 차치하고서라도 배 아파서 괴로워했던 1주일의 시간이 너무 손해막급이다.
아내의 말을 들어야 한다.
여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
아내의 말을 들어서 손해 볼 것 없다.
여자의 말을 들어서 피해 볼 것 없다.
오늘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