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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Dec 05. 2020

손님 한 명에 희망 하나


내가 점심식사 시간에 종종 가는 작은 식당이 있다.

처음에는 닭갈비를 팔았는데 손님이 줄자 가게를 반으로 줄이고 숯불 닭갈비로 주 메뉴를 바꿨다.

저녁에 술 한잔 기울이는 손님들을 상대하려고 했다.

하지만 낮 시간을 그냥 보낼 수 없어서 점심메뉴로 김치찌개를 판매한다.


둥그런 테이블에 등받이 없는 동그란 의자들이 놓여 있는 참 소박한 곳이다.

주방 앞에는 각자 마음껏 덜어 먹을 수 있도록 10가지 정도의 반찬이 놓여 있다.

주인 할머니가 매일 정성스럽게 메뉴를 바꿔가면서 만든다.

중고등학생 때 도시락 반찬으로 인기 있었던 짠맛 나는 반찬들이 주를 이룬다.

계란 입힌 소시지 부침, 동그랑땡, 멸치조림, 미역줄기, 시금치, 어묵, 두부, 오징어포, 콩자반 등이 주로 올라온다.

꼭 도시락 까먹는 기분이다.




내가 주문하는 메뉴는 김치찌개에 라면사리 추가이다.

밑반찬은 조금만 덜어온다.

어차피 다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날씨가 끄물끄물거리고 찬바람이 불 때는 찌개가 제격이다.

동료들은 조미료 맛이 난다는 둥, 선택할 메뉴가 없다는 둥 해서 도통 잘 가지 않는다.

그래서 나 혼자 간다.


나는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어떤 음식이 맛있는지 구분할 수가 없다.

고픈 배만 채우면 그만이다.

그래서인지 조미료를 많이 넣었는지 아닌지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굳이 그 식당을 자주 가는 이유가 있다면 식당 주인이 내 대학 선배이기 때문이다.

물론 학과는 다르다.

학번도 많이 차이가 난다.

학교 다닐 적에 만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데도 그냥 마음이 간다.

이런 게 끊을 수 없는 학연이란 것인가?




주인 선배는 고등학생 때 공부를 꽤 잘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학 입시에서 떨어지고 생각지도 않았던 후기 대학에 들어간 것이다.

그래도 그 학교에서는 상당히 점수가 높은 인기 학과였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지만 어머니의 정성으로 대학을 마치고 일본 유학을 갔다.

대학 전공과는 거리가 먼  애니메이션을 배우러.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서 애니메이션 회사를 세우고 열심히 일했는데 결과가 안 좋았다.

사업을 접고 오십이 넘은 나이에 어머니와 함께 식당을 운영하게 된 것이다.

사람 참 착한데 잘 안 풀리는 것을 어떡하겠는가?


그래도 나를 보면 “후배님!” 하면서 항상 밝게 맞아주는 그 모습이 참 좋다.

자리에 앉으면서 자동으로 찌개에 라면사리를 주문한다.

라면사리 가격은 1천 원이다.

그냥, 그 선배에게 1천 원이라도 더 팔아주고 싶은 것이다.




충남 홍성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17세에 공장 노동자가 되었던 정세훈 시인이 있다.

배우지도 못했고 가진 것도 없었지만 김소월의 시를 읽고 시인이 되고 싶어서 닥치는 대로 시를 썼다.

공책을 살 돈도 없어서 공장 구석에서 파지에 시를 쓰곤 했다.

그의 시 한 땀 한 땀은 그야말로 눈물과 땀방울들이다.


“몸의 중심으로

마음이 간다.

아프지 말라고

어루만진다.


몸의 중심은


생각하는 뇌가 아니다.

숨 쉬는 폐가 아니다.

피 끓는 심장이 아니다.


곳!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처 난 곳.

그곳으로

온몸이 움직인다.”


(정세훈 <몸의 중심> 전문)




내가 그 선배의 조촐한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그곳이 아픈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루만져줄 수 있는 곳,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팔아준 찌개 한 그릇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그래도

손님 한 명에 희망 하나 늘어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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