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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r 29. 2021

눈물이 우리의 인생이다


요즘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

눈가에 촉촉하게 눈물이 한두 방울씩 맺힌다.

주르륵 흐르는 눈물이 아니라 살짝 맺히는 눈물이다.

그러니까 살짝만 닦아도 된다.

하지만 은근히 신경 쓰인다.

말을 하다가도 눈물이 나고, 감정에 북받치면 또 눈물이 난다.

웃을 때도 눈물이 나고 가만히 있을 때도 눈물이 난다.

눈에 먼지가 들어간 것도 아닌데 애매한 타이밍에 눈물 한 방울이 흐른다.


눈물은 눈을 씻어내는 것이고, 이물질을 빼내는 좋은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과학적이고 상식적인 현상을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런 지식보다 눈물의 의미에 더 관심이 많다.

그러니까 눈물에 인생의 여러 의미들을 부여하고서는 눈물 흘리는 사람은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고 여겨버린다.

특히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은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절대로 눈물을 보이지 말라고 가르쳤다.




눈물에 대한 교육은 내 아버지의 전공과목이었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무릎 꿇리고서는 잔뜩 야단을 치셨다.

가끔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 때 야단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대개는 영문도 모른 채 아버지의 감정에 따라 야단맞았다.

그럴 때면 무섭기도 하고 분하기도 해서 눈물이 나왔다.

그러면 아버지는 더욱 호통을 치시면서 사내자식이 약해빠져서 어떡하냐고 하셨다.


그러면서 남자는 일평생 세 번 눈물을 보인다는 훈계까지 하셨다.

그 세 번 중 첫 번째는 어렸을 때이고, 두 번째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세 번째는 나라가 망했을 때라고 하셨다.

눈물을 흘리는 것에도 꽤 거창한 교훈을 들려주셨다.

하지만 나는 안다.

아버지도 자식들 다 잠든 사이에 홀로 밖에 나가 눈물 흘리고 들어오시곤 하셨다는 사실을.

하긴 아무한테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으니 안 우신 것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겠다.




사내아이들은 자라면서 친구들과 힘자랑을 하면서 서열을 매긴다.

사내들은 본능적으로 힘의 질서를 세우고 싶어 한다.

힘과 힘이 만나면 늘 싸움이 벌어진다.

그때 눈물을 먼저 보이면 지는 거다.

코피를 흘려도 진다.

물이든 피든 어쨌든 몸 밖으로 액체가 흘러나오면 지는 거다.

그래서 절대로 코피 안 나게, 눈물 흘리지 않게 싸움을 하는 방법들을 터득하려고 한다.

그렇게 눈물을 감추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하면서 컸다.


하지만 눈물은 참으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참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물의 본성이 그렇다.

아무리 두꺼운 콘크리트로 제방을 높이 쌓는다고 하더라도 어딘가에 구멍이 나면 물은 흐르고 그 높은 제방도 뛰어넘는 게 물이다.

정호승 시인은 <수선화에게>라는 시에서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며 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시를 흐르는 내용은 온통 눈물 흘리는 내용이다.

심지어는 하느님도 우신단다.




내 인생에 눈물을 더 이상 감추지 않아도 되는 일이 생겼다.

1983년 6월 30일에 KBS방송에서 시작한 <이산가족 찾기 특별생방송>이 중계될 때 전국 방방곡곡뿐만 아니라 해외 한인들까지 모두 울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울었고 어린아이들도 울었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노래만 흘러나와도 울었다.

50년 만에 가족을 찾은 이산가족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면서 부둥켜안고 통곡할 때 그 광경을 지켜보던 우리 모두도 함께 울었다.

살아있어서 고맙고 살아줘서 고맙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우리는 눈물 속에서 우리가 한가족이고 한민족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눈물을 흘리는 것은 절대로 약한 것이 아니다.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다시 살아가겠다는 몸부림이다.

우리 모두는 눈물 속에서 태어나 눈물을 흘리며 살다가 눈물 속에 잠이 든다.

눈물이 우리의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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