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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y 08. 2021

백신이 배신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1796년에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소젖을 짜는 사람들이 감염된 젖소로부터 우두(牛痘, Cowpox)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모습을 보았다.

몸에 흉측하게 여드름 같은 물집들이 생겼다.

처음에는 그 당시에 유행하던 천연두에 감염된 줄 알았다.

천연두는 우리나라에서도 ‘마마’라고 불렸던 혹독한 전염병이었다.

많은 사람이 천연두로 목숨을 잃었고 겨우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얼굴에 곰보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일평생 괴로움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 제너가 살펴보니 젖소에게서 옮은 그 우두라는 질병은 조금 지나자 깨끗이 없어졌다.

그것보다 놀라운 사실은 우두에 한번 감염되었던 사람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 것이었다.

제너는 혹시나 해서 우두의 물집에 있는 염증을 살짝 긁어내어 천연두 환자의 피부에 발라보았다.

그랬더니 정말 천연두가 나았다.

제너는 이 사실을 세상에 알려 천연두 치료의 선구자가 되었다.




제너는 우두를 이용한 천연 치료제를 라틴어의 ‘젖소(Vaccinus)’라는 말을 따와서 백신(Vaccine)이라 불렀다.

인류가 전염병에 대해서 개발한 첫 번째 치료제가 바로 이 천연두 백신이다.

이후에 전염병에 대한 치료제는 ‘백신’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어 부르고 있다.


백신은 그야말로 대단한 위력이 있다.

우드가 백신을 개발한 지 100년도 지나지 않아서 세계보건기구는 1980년에 인류가 천연두를 완전히 정복하였다고 공포하였다.

1952년에 미국의 조너스 소크가 개발한 소크 백신은 소아마비의 종식을 이끌어내는 영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천연두나 소아마비를 그리 대단한 질병으로 여기지 않는다.

아니 천연두나 소아마비가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수두룩하다.

이제는 백신만 있으면 어떠한 전염병도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세계적인 굴지의 제약회사들이 백신 계발에 박차를 가한다.




우리의 피부로 와 닿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사실 세계는 제약회사들 간의 치료제 전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나 불치병에 특효가 있는 치료제를 개발하여 특허를 따내면 엄청난 이익을 올릴 수 있다.

한 알의 캡슐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 때문이다.

연구자들 입장에서는 그동안의 수고를 톡톡히 보상받고 싶을 것이다.

제약회사 입장에서도 연구개발비를 충분히 뽑아내고 또 기업의 기본적인 생리인 이익을 추구하고 싶을 것이다.

다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딜레마가 생긴다.


백신만 나오면 이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백신이 나와도 살 수가 없다.

돈이 없어서 살 수가 없고 백신을 못 구하니 생명이 위태로워 살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백신은 그저 그림의 떡이 되고 만다.

차라리 백신이 안 나왔다면 그토록 속상하지는 않았을 텐데 도리어 더 큰 아픔만 얹어진다.

이쯤 되면 백신이 아니라 배신이다.




2012년에 개봉한 박정우 감독의 <연가시>라는 영화가 있다.

못된 사람들이 연가시의 감염을 막는 백신을 개발하고 일부러 사람들에게 연가시에 감염되게 만드는 내용이다.

약은 있다.

하지만 약을 구할 수 없다.

약값이 너무 비싸다.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영화는 그 못된 놈들의 행실을 밝혀내고 극적으로 특허 기술을 개방한다.

그래서 모든 제약회사가 복제 약을 만들어 사람들을 구해낸다.

10년 전 영화이지만 소름끼칠 듯이 오늘날의 상황을 예견하였다.


제너는 천연두로 목숨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으로 숱한 연구를 하였고 결국 치료제를 만들어 내었다.

그 이름을 ‘백신’이라고 지었다.

단순하게 라틴어 젖소의 뜻을 담은 것은 아닐 것이다.

젖소가 우유를 내서 사람들을 이롭게 하듯이 백신이 사람들에게 생명이 되기를, 희망이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제너의 바람대로 제발 백신이 배신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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