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좋은 일만 골라하는 ‘나’라는 사람은...

by 박은석


내가 해야 할 업무도 만만치 않은데 다른 사람의 일까지 맡아서 하게 될 때가 있다.

조직사회에서 이런 상황이 펼쳐지면 가만히 입 다물고 있으면 그 일을 피할 수 있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은 그렇게 가만히 있지 못한다.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으면 그 애매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다.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다들 눈치나 살피고 있는데 나까지 그러고 싶지 않다.

차라리 내가 해버리는 게 낫다.

옆에서는 이것저것 능력이 많아서 좋겠다고 칭찬을 한다.

그게 진짜 칭찬인지 아니면 ‘고맙다.

너 고생해봐라.’하는 말인지 그 속내를 모르겠다.

능력이 많아서 그 일을 물어온 게 아니다.

능력을 이야기하려면 그 능력에 따른 보상도 줘야 한다.

이건 그런 종류의 일이 아니다.

조직이 굴러가려면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그 누군가가 바로 내가 되는 것이다.

보상이 주어진다면 서로 자기가 하겠다고 난리를 쳤을 거다.




오지랖이 넓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MBTI 성격유형이 ESFJ여서 그럴까?

오지랖이 넓더라도 궂은일은 다 남들에게 넘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 많던 오지랖을 일할 때는 강도 만난 것처럼 모두 잃어버렸다가 일이 다 끝나면 귀신같이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ESFJ 성격유형이라면서도 전혀 딴판으로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나는 오지랖과 ESFJ 성격유형에 너무나도 충실하다.

남 좋은 일 다 하고 누가 물어보면 “저요! 저요!”하면서 손들기 좋아하고 인정도 많다.

모임에서는 회장을 하든지 만년 총무를 하든지 둘 중의 하나다.

선생님들은 내 성적표의 뒷장에 ‘위 학생은 지도력이 뛰어나며...’라고 적어주셨다.

나는 그 말이 좋은 말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런 식의 지도력이라면 허구한 날 손해만 볼 수 있다.

정말 내가 지도력이 뛰어났다면 직접 나서서 일하지 않고 남들을 시키고 부리면서 일을 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손발이 고생을 참 많이도 했다.

누군가 물을 엎지르면 냉큼 달려가서 같이 치우는데 한참을 치우다 보면 물을 엎지른 인간은 안 보이고 나 혼자 열심히 걸레질을 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속으로는 ‘그 인간은 왜 그렇게 살까?’ 의아해했다.

아마 그 인간도 나를 보면서 그랬을 것 같다.

‘저 인간은 왜 저렇게 살까?’라고 말이다.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익도 없는 일에 왜 나서서 고생을 자처하나 싶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남한테 당하고 살기 딱 좋은 성격인데 아직까지 보이스피싱 한 번 당해본 적이 없다.

나 같은 사람은 단번에 걸려들 것 같은데 어떻게 그런 것은 잘 피해왔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다음에는 절대로 도와주지 말아야지! 못 본 척하고 지나쳐야지.’라고 다짐을 하지만 막상 그 앞에 서면 ‘에구...

저리 비켜.

내가 도와줄게!’ 한다.




이런 내 성격은 아버지를 닮은 것일까?

어머니를 닮은 것일까?

아니면 두 분을 다 닮은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전혀 다른 돌연변이 유전자가 내 안에 있는 것일까?

어디서 어떻게 나에게 들어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살다 보니 그게 나의 성격이 되었고 나의 삶이 되었다.

투덜거리며 일감을 몰아왔고 그 일 속에 푹 빠져서 정신없이 일을 한다.

하나씩 정리가 되고 결과물이 보이기 시작하면 혼자 흐뭇해한다.

일을 마무리할 때쯤이면 나중에 다른 사람이 이 일을 하게 될 때를 생각해서 매뉴얼 비슷한 것을 하나 만들어 둔다.

그 표지에 학술 논문처럼 이것은 박은석의 작품이라고 적어두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

남들이 보면서 좋다고 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것, 이렇게 살아온 것, 계속 남 좋은 일이나 하며 살자.

보상은 다른 사람의 얼굴이 희미하게 밝아지는 것으로 받자.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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