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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Dec 25. 2022

이런 사람을 명의(名醫)라고 부른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옛날 중국 최고의 의원이었던 편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편작이 어느 날 괵(虢)나라에 갔는데 마침 괵나라 태자가 병에 걸려 죽었다. 그 소식을 들은 편작은 괵나라 궁궐 문 앞에 가서 어의를 만나 태자가 무슨 병에 걸려 돌아가셨는지 물었다. 어의는 태자의 병은 혈기가 막혀서 풀리지 않다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면서 그 혈기가 몸 밖으로 터져 나왔고 그러는 사이에 몸속의 내장이 상하여 죽게 되었다고 했다. 편작은 태자가 돌아가신 지가 얼마나 지났는지 물었고 어의는 반나절도 안 되었다고 했다. 그러자 편작은 자신의 신분을 알리고 자기가 태자를 살려낼 수 있다고 하였다. 어의는 편작에게 당신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느냐며 나무랐다. 편작은 어의에게 자신의 의술은 환자의 맥을 짚거나 몸의 상태를 살펴보지 않아도 병이 어디에 생겼는지 말할 수 있다고 하였다.




어의는 편작이 허풍을 떠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편작이 자신의 말을 정 믿지 못하겠다면 시험 삼아 들어가서 태자의 몸 상태를 살펴보라고 했다. 지금쯤이면 태자의 귓속에서 소리가 나고 코는 벌름거리고 있을 것이며 두 다리에 온기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어의는 정말 시험 삼아서 태자의 상태를 살피러 가는데 과연 편작이 말한 그대로였다. 어의는 급히 임금에게 편작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였다. 임금은 편작이 왔다는 말에 반가워하여 직접 편작을 마중 나왔다. 편작은 임금에게 태자의 질병이 어떤 병인지 자세히 알려드렸다. 지금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죽은 상태가 아니라고 하였다. 물론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죽을 수 있는 병이지만 치료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였다. 그러고는 태자에게 침을 놓았는데 한참 후에 태자가 소생하였다. 그리고 20일 동안 탕약을 먹게 하였더니 태자의 몸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온 나라에 퍼졌고 사람들은 편작을 향해서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의원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정작 편작 자신은 자신을 칭송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자신은 죽은 사람을 살려낸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을 치료한 것밖에 없다고 했다.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능력은 자신에게 없으며 살 수 있는 사람을 일어날 수 있게 도와줄 뿐이라고 했다. 이처럼 편작은 의술도 대단했지만 그 성품도 대단했다. 그 정도의 의술이라면 일평생 호의호식할 수 있도록 자신을 드러낼 만도 했을 텐데 편작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을 자랑하고 높이기보다는 겸손하게 낮추고 오직 사람을 살리는 일에만 몰두하였다. 하지만 편작이 도움을 주려고 하는데도 고집을 피우거나 편작을 무시하는 사람에게는 가차 없이 야단을 쳤다. 이런 편작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를 진정한 명의라고 칭송하였다.




편작을 생각하면서 명의(名醫)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본다. 어의도 굉장한 의원이었지만 편작은 어의에게 대롱을 들고 하늘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대롱의 작은 구멍으로 넓디넓은 하늘을 어찌 다 볼 수 있겠느냐고 야단을 친 것이다. 그렇다면 편작은 대롱을 던져버리고 맨눈으로 하늘을 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만큼 다양한 환자들을 만나고 다양한 의술을 공부하고 다양한 환경에서 의술을 행하였을 것이다. 명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지난한 세월 동안 숱한 연구와 실험과 시술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렀을 때는 아낌없이 사람을 살리는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자신이 노력하고 수고한 것에 대해서 두둑한 대가를 바라지는 않는다. 사람들에게 칭찬과 명성을 구하지도 않는다.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살렸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낄 뿐이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명의(名醫)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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