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받으러 갈 때마다 점점 왜소해지는 내 모습을 보고 의사선생님은 제발 운동 좀 하라고 조언 아닌 강권을 하셨다.
하긴 병원 진료 받으러 가는 날도 몸살이 날 만큼 내겐 힘든 외출이었다. 공황발작 때문에 외출을 못했고, 외출을 못하니 더 안움직이게 되고, 안움직이니 근육은 더 빠지고 그래서 외출은 더 어려워지고...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컬러배쓰 효과인건가...병원 진료후 힘겹게 집으로 돌아와 신발을 벗었다. 그때 처음 눈에 들어왔다. 신발장 구석에 놓여있던 빨강색과 파란색의 줄넘기.
* 컬러 배스 효과(color bath effect) : “색을 입힌다”라는 의미로 한 가지 색깔에 집중하면 해당 색을 가진 사물들이 눈에 띄는 현상을 말한다.
남북한 단합의 의미도 아닌 빨강, 파랑컬러의 줄넘기들이 신발장 구석에 걸려있었다. 언제 이걸 샀더라..,?
먼지가 좀 앉아있긴 했지만 초등학생들 사이에선 유명하던 줄넘기였다.
평소 외부의 작은 소리에도 발작으로 괴로워하던 내게 그 날은 모험과도 같은 날이었다. 마침 아파트 단지 내에 유달리 조용한 시간대였다. 아이들은 전부 학교에 있고 직장인들은 직장에 있을 그런 시간대 말이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 때 운동 관련 글을 연재해서 1위도 했던 나였는데, 운동에 대해선 트레이너만큼 자신있던 나였는데 줄넘기 정도는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솔직히 고백하건데 "줄넘기따위"라고 생각했었다.
어찌되었든 내 상황은 이리 괴로우나 저리 괴로우나 하루를 힘겹게 버티는건 매 한가지였다. 언제까지 약만 먹고 좀비처럼 누워서 세상을 등지고 살것인가?
귀마개를 단단히 하고 (외부소리에 발작이나 신체화 증상이 나타나면 큰일이므로), 줄넘기를 들고 기싯거리며 집앞 놀이터 옆 공터로 갔다.
그 순간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마치 체육대회 릴레이 마지막 주자로 뛸 때처럼.
2022년 2월 나는 처음으로 병원 진료 이외에 자발적으로 밖으로 나왔다. 그것도 비장하게 줄넘기를 들고서.
10개, 50개, 70개... 100개도 못 채우고 우웩...
초등학생들이나 하는 만만한 줄넘기일 줄 알았는데 이리 힘들 줄이야! 구토가 쏠려 입 안에 침이 순식간에 고였다. 눈물, 콧물은 왜 나는지... 몸 안에 수분이란 수분은 다 쥐어 짜내는 느낌이었다. 몇 번 뛰었다고 종아리에 쥐까지 났다.
죽을것 같이 힘드니 체면이고 뭐고 벤치에 드러누워버렸다,..
놀이터 벤치에 거의 드러눕다시피 헉헉댔다.
마침 하교를 한 듯한 초등학생 어린이 한 명이 줄넘기를 들고 내 근처로 왔다. 긴 포니테일에 볼이 통통하고 핑크색 츄리닝 세트를 입은 귀여운 어린이였다.
토끼같이 귀여운 그 여아는 나를 의식한듯 현란한 줄넘기 동작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아파트 윗층에서 나를 내려다 본게 아닐까. 저 아래 놀이터에서 줄넘기로 헉헉 대고 있는 안타까운 한 어른을 보고선 한 수 보여주겠다며공터로 온 느낌이었다.
"통통통~ " 탄력있는 관절에서 나오는 스프링 같은 뜀박질, 오랫동안 뛰어도 신나는 밝은 표정.
"보아라..,어른아! 이것이 줄넘기라는 것이다!"
마치 내게 몸짓으로 이렇게 가르치는 것 같았다.
다소 부끄러웠지만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하며 나는 나를 위로 했다.
벤치에 뻗었던 몸을 무겁게 다시 일으키며 나도 그 초등학생의 도전장을 받아들였다. (어쩌면... 그 초등학생은 나같은 사람은 신경따위도 안썼을지도 모른다... 나 혼자만의 대결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날 난 꽤 오랜 시간 동안 줄넘기를 했다. 뛰다 멈추고, 헉헉대고, 또 뛰다 멈추고 헉헉 대고..
하루 줄넘기 1000개.
그 날부터 내가 목표한 줄넘기 개수다. 시간은 상관 없었다. 구토가 쏠리면 토하면 되고, 힘들면 쉬었다가 다시 하면 된다.다시 말하지만, 이리 하나 저리 하나 괴로운건 매 한 가지였으니까.
줄넘기의 줄을 한 번, 한 번 힘겹게 뛰어 넘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 꼭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걸어야만 힘든 고행의 길은 아니라고.지금 이 자리에서 한 번의 힘겨운 뜀박질을 한다는 것, 바로 주저 앉아버리고 싶은 마음을 눌러가며 "한번 더"를 외치며 뛰는 것. 그것이 내겐 수행 그 자체였다.
당장 내일 어떻게 살지, 내년에 어떻게 살아갈지, 병을 이기고 내가 다시 학교로 복귀해서 교단에 설 수 있을지...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보다 지금 이 순간을 뛰어넘는게 제일 중요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