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화끈한 셀러브레이팅
2011년 12월 3일.
전 남자친구가 현 남자친구가 된 날. 너와 내가 결혼한 날이다.
13년이 된 2024년 12월 3일 결혼기념일.
그 흔한 꽃다발은커녕 남편은 저녁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남편이 전화가 왔다.
"오늘 누구 좀 만나고 들어갈게"
“오늘 같은 날은 좀 심하지 않아? ”
“어? 왜? 오늘 무슨 날이야?”
“오늘 며칠인지 몰라?”
“아! 맞네 맞다. 미안미안 취소하고 일찍 들어갈게 “
물론 나도 선물도 편지도 아무 준비 안 한 빈손이었지만 그래도 기억 못 한 남편 보다 눈 내가 낫다고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어렵게 같이 외식이라도 나가자 했지만 아이들의 일정이 오늘따라 둘 다 늦게 끝나 어디 맛있는 거창한 걸 먹으러 갈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 성당 봉사에 간 큰아이에게는 버스 타고 집으로 돌아와라 일러두고는 우리가 선택한 저녁메뉴는 집 앞 치맥이었다.
사실 이제 뭐 기념일을 크게 챙기는 부부가 아니라 서로서로 생일정도만 마음껏 챙겨줬는데 그래도 결혼기념일은 너와 나 우리 가족의 시작이니까 자연스레 챙기자 이야기했는데 이렇게 로맨스 한 톨도 없는 날이라니. 서글픈 마음이 들려고 하다가 그래도 지금 우리가 함께 잘 살고 있으니, 남편이 열심히 돈은 벌어 오고 있으니, 아이들이 건강하게 크고 있으니 감사하자 싶어 서글퍼 하기까지는 말자 싶다.
넷이 앉아 서로 닭다리를 양보해 가며 치킨을 뜯고, 생맥주 한잔씩 들어 짠 하고, 아이들 키우느라 고생한다. 나랑 살아줘 고맙다 이런 일상적인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면서 앉아있다.
그러다 갑자기 치킨집 사장님께서 다가오시더니 뜬금없이 말씀하신다.
"계엄령이래요. 애들이랑 얼른 들어가요"
처음엔, 에이 사장님 지금이 2024년인데요, 무슨 언제 적 이야기하세요. 하다가 그제야 티브이를 확인하고 남편과 서로 눈이 마주쳤다. 진짜다. 진짜 계엄령.
얼마 전 읽은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에서 글로만 구경했던 그 계엄령.
집에 들어와 티브이를 보니 이미 국회의원들과 군인들이 각각 국회로 가고 있고 계엄령을 듣고 모인 시민들과 군인 사이에 몸싸움이 일어나고 있었다.
"우리 군대가 총을 쐈어, 넋 나간 듯 중얼거리는 너를 행력의 앞으로, 더 앞으로 잡아끌었는데. 우리 군대가 총을 쐈어,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너를 힘껏 끌고 나아가며 난 노래했는데, 목이 터져라고 애국가를 따라 불렀는데. 그들이 내 옆구리에 뜨거운 불덩이 같은 탄환을 박아 넣기 전에. 저 얼굴들을 하얀 페인트로 지워버리기 전에."
- 한강, 소년이 온다. 2장 검은 숨 발췌
이런 구절이 떠오르는 군인과 시민의 대치였다. 그리고는 군인들은 국회의 창을 부스고 들어가고 있었다.
창 밖에서는 헬리콥터 소리가 정신없이 나고 있었고, 티브이 속 사람들은 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에서 내가 국회에 들어갈수 없느냐, 지금 군인이 내 길을 막을수 있느냐 왜 나는 민주주의속에 살 수 없냐며 소리 지르고 있었고 이내 나는 점점 현실감이 없어졌다.
결혼기념일에 맞춰 이런 큰 사건이라니. 국가적 셀러브레이팅인가. 이건 꿈이려나 싶은 마음에
새벽까지 잠 못 이루며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다.
이 상황이 왜 흘러왔는지, 이유가 무엇인지, 얻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기 힘들었다.
2024년 지금 이 시간에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지, 계엄령이란 걸 처음 겪어본 나로서도 이해할 수 없이 겁만 나는 상황에서 이 상황을 아이들에게 뭐라 이야기해야 하는지 막막했다.
그렇게 혼란 속에 내 13주년 결혼기념일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