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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스위머 Nov 04. 2024

운동몸치가 신기초 반에 가게 되면

몸치 운동치가 도전하는 수영일기 1탄 신기초반

"오늘 처음 오신 분들, 신기초반 이쪽으로 오세요!"


  1일 첫날, 준비 운동이 끝나고 나서 선생님 한분이 신기초반을 불렀다.

수영복 입은 모양새가 어색해 다들 쭈뼛쭈뼛 손과 발을 어찌할지 몰라 비비 꼬면서 제각각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모인다.

지난 등록일에 나와 같은 새벽 등록 전쟁에 성공한 이들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어떤 수영복들을 입고 왔을까 궁금해서 모두들 이리저리 안보는 척, 멀리 보는 척, 딴짓하는 척, 모두들 각각 서로의 얼굴을 한 번씩 훑어보기 바빴다.



  

  지난 25일 새벽 등록을 성공하고 나서 기쁨도 잠시, 금세 나는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수영복!! 가장 큰 문제인 수영복이라는 새로운 국면에 맞닥뜨렸다.

어른이 되어서 사본 수영복이라고는, 신혼여행으로 갔던 하와이에 가서 나도 핫한 미국언니들처럼 와이키키 해변에서 벗어재껴 보리라 하며 큰맘먹고 샀던 형광 주황 비키니와(문제는 그때 한번 이후로 쭉 옷장 안에 처박혀 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꺼내본 적이 없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워터파크용으로 산 래시가드뿐이었다. 그마저 있는 래시가드도 언젠가 만들 거지만, 아직은 세상에 빛을 보지는 못하고 볼록한 피하지방 아래 숨겨져 있는 복근이 도드라져 보이는 게 싫어서 물놀이를 갈 때마다 나는 수영복은 입지 않고서 짐지킴이를 자처하고 땡볕에 앉아있기를 선택한 시간들이 10년이었다.


  래시가드를 입고 수영강습을 가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고, 뭐를 하나 사긴 사야 할 것 같고.

그렇다고 검은색 수영복을 사기엔 너무나 물범 같아 보이는 모습이 상상이 되어 싫고, 가슴선은 적당히 높아 나의 작은 치부가 드러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아래는 적당하게 낮게 내려가 다리는 길어 보이면서 조신한 유교걸의 모습을 뽐내고 싶은데 그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적당한 수영복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하와이에서도 당당히 입지 못한 비키니는 옷장에 10년 있다 버려졌다. @PIXABAY




   핸드폰을 부여잡고 뒤지고 뒤지고 뒤지길 2박 3일, 수영복의 세계는 내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방대했다.

 일단 색깔을 선택할 수 없이 다양했고, 수영복 무늬가 솔리드이냐 패턴이냐, 등 끈 모양이 X인지 U인지, 다리컷이 5단계로 나뉘어 있어 나에게 맞는 조신한 높이도 선택해야 하고, 내가 아는 브랜드라고는 아레나 나이키인데 모르는 브랜드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검색할 때마다 새로이 하나씩 엮여 나왔다. 가격도 2만 원부터 20만 원대까지 하늘과 땅차이 만큼이나 나는것이, 나는 아직 수영은 시작도 안 했는데, 수영복 검색만으로도 물속에서 허우적 대고 있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간이 왔다. 지금 주문하지 않으면 무슨 수영복을 입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강습날 입을 수영복도 없이 벌거벗고 가게 생겼기 때문이다. 수영복, 너란 아이 쉽지 않구나.


그래, 검정은 아닌 네이비 색이 적당하겠다. 하지만 노랑 파이핑이 들어가서 소소하게 포인트가 되어주면 좋겠다. 가슴은 보이지 않고 다리는 길어 보이지만 조신한 높이를 찾아서 적당한 가격이라고 생각되는 한벌의 수영복을 다급하게 결제를 눌렀다. 사실 수영복만 결제하고 나면 수모와 수경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아직 기능성에 대한 필요가 크게 없으므로 수영복 색깔만 적당히 맞추어서 하나씩 고르면 되었다. 그렇게 고른 수영복을 입고서 간 첫날, 다른 사람들이 입은 수영복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비슷한 고민을 품었다가 내린 결론이리라 생각으로 보니 갈등의 흔적들이 엿보였다. 하지만 모두들 내린 결론이 하나 같이 같은 모습에 혼자서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다. 그렇게 나는 무난한 무채색에 유교걸을 지키는 라인의 검정 비슷한 색들의 피부색을 가진 물범 무리들의 한마리로 나는 신기초 반이 되었다.



그렇게 간택된 나의 첫 수영복



  움파 움파.

내가 분명 어릴 적 수영을 배울 때 첫날의 정석은 움파 움파였던 거 같은데 성인 신기초반 첫날은 물속에 들어가지 못했다. 수영장 물속에 내 몸은 떠보지도 못하고 테두리에 앉아 발차기 연습을 30분간 했다. 천천히도 찼다가 세게도 찼다가 뱃살에 힘을 주기도 했다가 허리를 펴고 앉아도 봤다가 하면서. 그러다 킥판을 쿠션삼아 엎드려서 발차기를 하는 순간, 내 눈앞에 펼쳐진 처음보는 엄청난 광경에 한참을 넋을 놓고 보게 되었다.


  바로 그 이름만 들어도 갈길 멀어보이는 연수반.

  보조풀 보다 훨씬 긴 메인풀 레인 물 안에서, 선생님 마저 고요한 그 속에 찹찹찹찹 모두들 앞으로 나가는 소리와 함께 톱니바퀴처럼 뱅글뱅글 돌아가는 사람들 위로 수면에 저어지는 우아한 팔들만 보일뿐, 누구 하나 숨이 차서 얼굴 내밀어 숨 쉬는 사람 하나 없어 보이는 광경이 눈앞에 있었다. 그래 저기다 저기! 내가 오늘 시작한 수영 인생 목표가 저기 있었다. 저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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