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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스러운 하루

by pahadi


평생 한 가지 음식만 먹을 수 있다면 나는 카페라테를 선택하겠다. 우유의 부드러운 물결 속에 씁쓸한 커피 맛이 윤슬처럼 반짝인다. 우유의 은은한 단맛이 어우러지는 고소함. 이 완벽한 조화를 정말 사랑한다.

매일 아침, 힘겹게 눈을 뜨는 나를 달래주는 건 따뜻한 카페라테다. 따뜻한 카페라테를 마셔야 본격적으로 하루를 시작할 힘이 난다. 매일 오후, 슬슬 에너지가 떨어질 때쯤 아이스 카페라테로 재충전한다. 이렇게 하루에 두 잔, 무슨 보약이라도 되는 듯 꼬박꼬박 열심히 챙겨 마신다. 위염을 달고 살아 커피를 줄여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일상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오래된 행복이기 때문에.

일만 시간을 채우면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된다고 하는데 일만 잔보다 곱절은 더 마셨으니 나름 카페라테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 어물쩍 넘어가기엔 맛있는 카페라테를 너무 많이 마셔보았고, 완벽한 카페라테가 갖추어야 할 나만의 조건이 너무도 확실하다.

일단 원두가 신선해야 한다. 산미가 적당히 가미된 신선한 원두가 맛있는 카페라테의 첫 번째 조건이다. 두 번째로 우유가 맛있어야 한다. 간혹 숙성 우유나 생크림을 쓰는 데도 있는데 그냥 원유 100퍼센트 우유로 만든 카페라테가 좋다. 그중에서도 ‘소화가 잘 되는 우유’가 라테에 참 잘 어울린다. 세 번째로 우유에 스티밍을 적당히, 잘해야 한다. 과유불급이라는 만고의 진리가 여기서도 통한다. 적당히 온도를 올리고, 적당한 양의 공기를 불어넣어 우유를 따뜻하고 부드럽게 만들어야 한다. 너무 과할 경우, 우유의 물과 지방이 분리되어 최악의 카페라테가 된다.

무언가에 대해 잘 아는 것. 이것은 행복의 조건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맛없는 카페라테는 기어코 나의 하루를 망치고 만다. 어제의 맛있는 카페라테가 오늘의 맛없는 카페라테를 더욱 형편없이 만들며 하루의 시작을 엉망으로 만들다 급기야 오늘을 영 안 풀리는, 재수 없는 하루로 단정 짓고 만다. 이게 그럴 일이야 싶은데 어디 내 기분이 내 마음대로만 되는가? 맛있는 카페라테는 나의 하루의 디폴트 값이 되고 맛있는 카페라테의 기준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끊임없이 갱신된다.

카페라테가 행복에서 불행으로 변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보통은 단골 카페의 보증된 카페라테를 사 먹지만, 수많은 불확실성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단골 카페가 문을 닫아서, 내 컨디션이 별로라서, 새로운 카페에 마음이 동해서 등등 이유는 많고 많다. 나의 하루에 맛있는 카페라테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말하는 이유는 지금, 이 순간 나의 손에 들린 카페라테가 참으로 맛없기 때문이다. 아... 추락하는 나의 하루를 구해내야만 한다. (그나마 별로 있지도 않은) 긍정세포들을 풀가동한다.

‘어차피 오후에 카페라테 한 잔 더 할 거니까 괜찮아.’

‘오늘은 카페인 좀 줄여서 밤에 잘 자겠다.’

‘안 그래도 위 때문에 커피 좀 줄여야 하는데 잘 된 일이지 뭐.’

‘오늘 하루 액땜했으니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4500원이 아깝기는 하지만 내가 진짜 원한다면 지금 당장 4500원짜리 커피를 한 잔 더 사 먹을 수 있어. 그 정도 여유는 있다고. 우와! 나 진짜 어른 같아. 그래 그러니까 이런 작은 시련쯤은 어른스럽게 넘겨버려. 나는 어른스러운 어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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