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다이어리 표지 안쪽에는 ‘너를 좋아해’라는 이름의 리스트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날 때마다 쭉쭉 적어간다. 그리고 그 리스트를 다 채우면 여태껏 작성한 리스트와 이어주고 다이어리 표지 안쪽에 새 종이를 붙인다. 그곳에 새로이 다가올 시간들을 채워줄 설레는 것들의 이름을 낱낱이 적어갈 것이다.
‘너를 좋아해’의 리스트는 내 손등의 주름이 늘어나는 만큼 성실하게 늘어날 것이다. 나의 키는 이제 자라지 않지만 대신 좋아하는 것들의 리스트가 대신 쭉쭉 자라날 것이다. 그렇게 ‘좋아해’로 가득한 세상에서 사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것이 나의 장래희망이다.
‘너를 좋아해’라는 리스트는 때론 ‘언젠가 꼭 할 거야’로 이름을 바꿔서 버킷리스트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리스트를 작성하는 이유는 적당한 타이밍이 왔을 때 재고 따지지 않고 기꺼이 이 한 몸 던지기 위해서다. 좋아하는 영화가 개봉해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상영이 끝나고 나서 땅을 치고 후회하는 게으른 나에게 주는 예고장 같은 거다. 세상엔 언제나 할 이유보다 하지 않을 이유가 넘쳐나니까 미리미리 재촉해두어야 한다.
‘할 거야!’
‘왜?’
‘그냥 하고 싶으니까!’
좋아하는 밴드가 해체했다. 더 이상 그들의 공연을 볼 수 없다. 더 이상 그들의 새 노래는 들을 수 없다. 더 자주 공연 보러 갈걸. 후회가 들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의 그들이라면 어떤 노래를 들려줄까.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간이 가면 모든 것은 변한다.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그래도 사랑하는 것들이 그대로이길 바라는 애틋한 마음 또한 당연하리라.
그 밴드가 그리워, 그들의 노래와 함께한 시절이 그리워서 가끔 그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검색해 본다. 모두 새로이 찾은 자리에서 각자의 노래를 이어가고 있다.
‘새 노래가 나왔구나.’
한 명의 목소리가 담긴 노래를 듣는다.
‘이 노래도 좋네.’
좋아하는 것은 사라진 게 아니라 수 없이 많은 가지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너를 좋아해’ 리스트는 앞으로도 계속 쭉쭉 뻗어나갈 것이다. 내 마음속에 있는 ‘좋아해’는 사라지지도 빼앗을 수도 없는 영원히 나만의 것이다. 그 마음은 나날이 커져만 갈 것이다. 그리고 그 덕에 나의 삶은 튼튼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