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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치 박치 댄스 댄스

by pahadi


몸치인 나는 줌바를 간다. 줌바란 무엇인가. 줌바는 라틴 음악과 댄스 동작, 에어로빅을 결합한 운동이다. 그렇다. 줌바는 일종의 춤인 것이다. 극내향인 소심쟁이 몸치가 춤을 추러 간다는 것은 인류 최초 우주 비행에 나서는 우주 비행사처럼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내적 흥은 넘치지만 몸이 마음을 따라 주지 않는다. 비트에 몸을 실으려고 할 때마다 번번이 버퍼링이 걸려 꼭 반박자씩 늦는다. 틀을 벗어난 팔과 다리는 개성이 넘치다 못해 지나치다. 이 심각한 몸치를 숨기기 위해 춤에는 전혀 관심 없는 척 살아왔다.

조신한 세월이 흐르고 꾸역꾸역 나이를 먹으면서 건강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고혈압 전단계라는 주홍 글씨가 건강 검진표에 새겨졌다. 이제 물러설 곳이 없다. 살아남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늘었다. 운동.

어떤 운동해야 할까. 운동이라면 참 골고루 싫어한다. 러닝, 헬스부터 요가, 필라테스 심지어 테니스까지 고려해 봤지만 영 당기는 게 없다. 딱 하나만 빼고 춤. 마음이 동해야 몸이 조금이라도 움직일 것 아니야? 지금 창피한 게 대수야? 그냥 추자! 춤.

그렇게 줌바를 시작하게 됐다. 줌바 수업 첫날. 선생님께서 새로 온 회원을 소개하기 위해 내 이름 석자를 크게 불렀을 때 당장 집에 가고 싶었다. 전 그냥 하나의 그림자처럼 있고 싶을 뿐이라고요. 하지만 지금 문을 열고 나가는 게 더 이목을 집중시키는 일이므로 두 눈 꼭 감고 화려한 사이키 조명아래 섰다. 전신 거울로 보는 나의 모습이 한없이 낯설게 느껴지던 찰나 익숙한 90년대 음악이 흘러나왔다. 마음이 들썩들썩. 몸도 좀 흔들어 볼까.

그게 벌써 일 년 전 일이다. 겨우겨우 일주일에 두 번 줌바 수업에 가지만 그래도 자그마치 일 년 동안이나 계속하고 있다. 춤은 전혀 늘지 않았다. 마음 편하게 나이 탓을 하겠다. 하지만 그 나이덕에 조금은 뻔뻔해졌고 그 뻔뻔함이 일 년을 버티게 했다. 부족한 뻔뻔함을 채우기 위해 가끔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나는 재활 중인 은퇴한 프로 댄서다!! 엉망진창이어 보이지만 사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란 말씀!’

줌바를 하면서 느낀 점은 이것이다. 첫째, 재밌다. 나의 간절한 몸짓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니 내가 즐거우면 되는 것 아닌가. 역시 마음이 동하는 곳에 가야 한다. 재미있어야 계속할 수 있다.

둘째, 나만 못 추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제일 못 추지만 나만 못 추는 것이 아니다. 힐끔힐끔 눈을 돌려보면 모두 자기만의 몸짓으로 음악을 즐기고 있다. 우리가 프로도 아닌데 잘해야 하나? 오른발이 나가야 할 타이밍에 왼발이 나가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고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다. 모두에게 각자의 어려움이 있다. 허리가 아픈 사람, 무릎이 아픈 사람, 어깨가 안 올라가는 사람. 완벽한 조건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포기하느냐? 그렇지 않다. 허리가 아프면 복대를 차고, 무릎이 아프면 뛰지 않고 서서하고, 어깨가 안 올라가는 사람은 한쪽 팔만 들고 한다. 힘들고 어려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한다. 나도 그냥 반박자 느리게라도 하면 되는 것이다.

줌바 도전기는 나에게 1kg의 근육과 업그레이드된 뻔뻔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다는 근성과 뭐든지 시작해 보자는 자신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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