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블랙홀

by pahadi


아이를 낳고 검은 늪에 빠진 것 같은 나날이 이어졌다. 산후 우울증이었던 것 같다. 출산 후 앉아있기 힘들 만큼 건강이 안 좋아졌지만 아이를 돌봐야 했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나를 더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아이를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 잡으려고 애썼지만 꼼지락 거리는 아이를 안고 울지 않은 밤이 없었다. 그 작은 체온에 기대어 겨우 버티는 밤들이 이어졌다.

그때 비공개 블로그에 폭포처럼 검은 마음을 쏟아냈다. 다시 읽어볼 새도 없이 글들은 늘어나기만 했다. 돌아보면 그렇게라도 비우고 비워서 그 무거운 시절을 지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날부터 서서히 그 블로그를 찾는 날이 줄어들었고 블로그의 존재조차 잊는 날이 늘어갔다. 그렇게 서서히 검은 늪을 벗어났다.

이제는 지난 추억이 된 블로그를 다시 열어보고 싶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때의 나를 마주하는 게 아직 버거운 것 같다. 봉인이 해제되는 순간, 그때의 어둠이 다시 나를 덮칠 것만 같다. 아직도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나에 대한 실망감이 스며드려는 순간,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내 마음을 탈탈 털어 햇볕에 걸어둔다.

평생 그 블로그를 열지 않아도 괜찮아. 읽기 싫으면 그냥 묻어두는 거지. 그건 내가 단단하지 못해서가 아니야. 때론 덮어두는 게 현명한 방법이야. 잊을 수 있으면 잊어버려. 그곳이 블랙홀처럼 나의 어두운 시간을 삼켜버렸으니 이제 가볍게, 가볍게 살아가면 돼. 살다 보면 또 힘든 시간이 찾아오겠지. 그때마다 새로운 블랙홀에 모든 걸 탈탈 털어버리고 살살 걸어가면 돼.

keyword
화, 목, 토 연재
이전 13화성급하고 미련한 독서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