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뱅쇼 같은’이라는 말이 있다. 그 뜻은 ‘성급하게 시도했다고 무참하게 실패한’이다. 그 유래를 알아보자.
술은 못하지만 뱅쇼는 좋아한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카페에 뱅쇼 메뉴가 추가되면 마음이 설렌다. 특히 수제 뱅쇼라는 글자가 보이면 꼭 사 먹는다. 시럽을 넣은 뱅쇼 말고 진짜 레드 와인에 각종 향신료와 과일을 넣어 달인 진짜 뱅쇼를 사랑한다.
그런데 뱅쇼 사 먹는 돈도 만만치 않고, 집 근처에 맛있는 집을 찾기도 쉽지 않다. 몇 번 가짜 뱅쇼에 속은 뒤로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내가 만들어 먹을까?’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찾아보니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도 않았다. 심지어 ‘뱅쇼 만들기 kit'도 팔고 있었다. ’ 어렵지 않겠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 집 식탁에는 ‘뱅쇼 만들기 kit'와 레드와인 두 병이 놓여있었다. 이왕 만드는 거 잔뜩 만들어서 친구들도 나눠 주어야지. 우리 집에서 가장 큰 솥을 꺼내 망설임 없이 와인 두병을 콸콸 붓는다. 그리고 향신료도 아낌없이 넣는다. 과일도 넉넉히 넣으면 더 맛있을 것이다. 이제 끓이는 일만 남았다!
어느 정도 끓이고 맛을 보았다. ‘아직 아니군’ 다시 보글보글 끓이고 맛을 보았다. ‘음... 아직도 아니네.’ 더 열심히 끓이고 맛을 보았다. ‘이게 아닌데.’ 아무리 끓여봐도, 설탕을 더 넣어봐도 내가 아는 뱅쇼 맛이 아니었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실패였다.
이 아까운 와인을 어쩐단 말인가. 어느새 2L 가깝게 늘어난 뱅쇼 아닌 뱅쇼를 차마 버릴 수는 없었다. 결국 가족들에게 강요하며 야금야금 마셨다. 가족들은 끔찍한 맛의 뱅쇼 아닌 뱅쇼 마실 때마다 치를 떨었고 우리 집에서 ‘뱅쇼처럼’은 지금 같은 뜻이 되었다. 그리고 남은 '뱅쇼 만들기 kit'는 어두운 찬장에 봉인되었다.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할 때마다 가족들은 제2의 뱅쇼를 만들 거냐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여기에 대해 불만을 제기할 생각은 없다. 아니, 염치가 없다. 사실 우리 집에는 ‘뱅쇼 만들기 kit’ 말고도 각종 베이킹 재료와 5단 서랍 두 개를 가득 채우는 천과 바느질 도구들이 있다. 그 외에도 샅샅이 말하자면 끝없는 ‘뱅쇼 같은’것들이 구석구석에 쌓여있다.
지난 뱅쇼가 씁쓸하긴 하지만 이렇게 성급하게 시도하는 내가 싫지는 않다. 망설이다가 영영 시작조차 할 수 없을걸. 망친 뱅쇼를 맛있는 뱅쇼로 만들 때까지 노력하는 꾸준함은 없어도 나에게는 무모함이 있다. 하고 싶으면 일단 하고 보는. 하고 싶다는 마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 무언가에 설렌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이냐. 아무 때나 오는 순간이 아니다. 이 순간을 잡지 않으면 분명 휘발되어 버릴 것이다.
비록 내가 만든 뱅쇼는 쓰디쓰지만, 케이크는 흘러내리고, 바느질은 삐뚤빼뚤하지만, 나는 앞으로 평생 좋아하는 뱅쇼를 어떻게 만드는지 아는 사람이고, 누군가를 위해 케이크를 만들어 본 사람이고, 급하면 직접 구멍 난 옷쯤은 꿰맬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내 삶은 풍부해진다. 흠흠, 물론 집 안에 물건들도 풍부해지는 게 문제지만. 언젠가 다 쓸모가 있을 거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