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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콜요청금지 Jun 19. 2016

너는 착한 아이야

나카와키 하쓰에

문제 학급의 초보 교사와 학대 아동의 이야기 '산타가 오지 않는 집', 어릴 적 엄마에게 학대받은 기억때문에 다정할 수 없는 엄마의 이야기 '웃음가면, 좋은 엄마 가면', 동생과 차별하고 엄하기만 했던 엄마 때문에 상처받은 딸이 잠시동안 치매에 걸린 엄마를 돌보는 이야기 '엄마를 버리다', 새어머니로부터 학대당한다는 사실을 거짓말이라고 웃어넘기는 친구하고만 편하게 어울릴 수 있는 아이의 이야기 '거짓말쟁이', 혼자 사는 할머니가 장애아이를 만나서 행복의 의미를 되새기는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너는 착한 아이야'는 이렇게 다섯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2012년 서점대상 최종후보에 올랐던 작품이라더니 과연 가슴 따뜻해지면서 누구나 이런 저런 생각을 떠올리며 읽을 수 있는 소설인 듯. 


내가 맡은 반에는 ADHD도 학습장애아도 없다. 4반 선생님은 학습장애아가 두 명이나 있는데도 수업을 잘 이끌어간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여름방학이 되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마치 어린아이처럼. - p.36 '산타가 오지 않는 집'

첫번째로 수록된 단편, '산타가 오지 않는 집'에 이 책의 제목인 '너는 착한 아이야' 라는 대사가 나온다. 부모자식도, 선생님과 제자도, 모든 관계와 관계를 이루는 방법들은 그 역할 때문에만 생기는 건 아닌 것 같다. 역할은 주어졌을 뿐이고, 아무것도 당연하진 않다고. 사랑과 배려, 관심, 믿음을 갖는 순간은 진지한 고민과 성찰에 의해서만 찾아온다.


공원은 마치 온실 안처럼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공원에는 유치원에 다니기에는 어린 아이들과 엄마들뿐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이의 시간에 자신의 시간을 그대로 포개어 보내는 수밖에 없다. (...) 엄마들은 항상 웃는다. 웃음은 '온실' 전체에 가득하다. 그래서 나도 웃는다. 내가 계속 웃기 때문에 아야네는 공원에 오는 것을 좋아하게 됐다. - p.82

이어폰을 낀 고등학생 정도의 남학생이 짜증스런 표정으로 우리를 째려보며 아야네 바로 옆을 스쳐 지나 간다. 내 안의 물웅덩이의 물이 갑자기 불어난다. 이 탁한 물에서 꽃이 자란다. - p.103

"아무튼 요란을 떤다니까." 그래도 얼버무리려고 말을 꺼냈다. 그런 나를 하나 짱 엄마가 정면에서 껴안았다. 파스텔 옐로우 덩어리가 나를 껴안았다. 남편도 이렇게 꼭 안아 준 적은 없다. - p. 132 '웃음가면, 좋은 엄마 가면'

두번째 단편이 제일 기억에 남았는데, 어릴 적 엄마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정신적 물리적 학대를 당했던 주인공이 결혼할 땐 아이를 원치 않는다던 남편이 원해서 아이를 낳게 되고, 아이를 미워하고 학대하게 되었다가, 같은 경험을 했지만 극복한 이웃 엄마으로부터 치유를 받는 이야기이다. 공원을 온실로,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을 꽃으로 비유하고, 그 안에서 엄마와 아이들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묘사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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