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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콜요청금지 Jan 19. 2017

편의점 인간

무라타 사야카

얼마전 화제가 되었던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떠오는 소설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반사회적으로 행동하는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느낌이 들었던 것...과 더불어 두 책 모두 저명한 상을 수상한 작품이면서 난해하다는 공통점이 -ㅁ- 뭐, 난해한 쪽으로는 "채식주의자"가 더 하긴 하다;;


"편의점 인간"은 실제로 대학 시절부터 현재까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글을 쓰고 있는 79년생 작가가 편의점에서 일하는 주인공을 그린 소설로, 작가의 배경을 생각하면 매우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도 주인공처럼 오묘한 생각을 하는 사람일지도.


주인공 후루쿠라 는 작가의 실제 경험처럼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서, 18년째 같은 편의점에서 일주일에 5일씩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는 싱글 여성이다. 정규직으로 취업을 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고, 연애도 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로만 살아가는 그녀는 슬슬 주변의 잔소리와 참견의 시선이 번거로워지려는 참이다. 사실 그녀는 보통 사람의 감정을 느끼거나 공감하지 못해서, 보통 사람들과 보통의 방식으로 소통하고 어울리는 방법을 몰랐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편의점 점원의 매뉴얼에 따라 규율과 규칙을 습득하고, 다른 편의점 직원들의 감정 표현을 흉내내면서 티나지 않게 사회의 구성원이 되었다.

왜 편의점이 아니면 안되는지, 평범한 직장에 취직하면 왜 안 되는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완벽한 매뉴얼이 있어서 '점원'이 될 수는 있어도, 매뉴얼 밖에서는 어떻게 하면 보통 인간이 될 수 있는지, 여전히 전혀 모르는 채였다.
- p.29
편의점에 계속 있으려면 '점원'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건 간단한 일이예요. 제복을 입고 매뉴얼대로 행동하면 돼요. 세상이 조몬이라면, 조몬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보통 사람이라는 거죽을 쓰고 그 매뉴얼대로 행동하면 무리에서 쫓겨나지도 않고, 방해자로 취급당하지도 않아요. (...) 그러니까 모든 사람 속에 있는 '보통 인간'이라는 가공의 생물을 연기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 p.112


"채식주의자"와 "편의점 인간"은 둘다 정상의 사회적 인간으로 인정되는 둘레를 벗어난 주인공의 이야기이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은 인간의 몰이해와 그로 인한 폭력에 질려 더이상 보통 인간이기를 거부하지만, "편의점 인간"의 주인공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한 이후 '편의점 점원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서야 사회에 속한 것에 안심하고, 남들의 흉내를 내어서라도 사회에 속한 톱니바퀴가 되고 편의점 인간으로 계속해서 살아가고자 한다.


(폭력적인)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여자와 자신만의 방식으로 결국은 사회에 속할 수 있는 것에 안심하는 여자는 양극단에 있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의 공통점은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다. 서로 다른 존재로서의 이해와 존중 보다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불쑥 들어와 휘저어 놓는 무례함이 있다.


"편의점 인간"의 여자 앞에 등장하는 남자 인물도 독특하고 정반대로 극단적인데 여자가 이 남자와 엮이고 다시 헤어지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꼭 나 같다. 인간다운 말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 p.83
모두 희희낙락하며 시라하 씨를 야단치려 하고 있었다. 그것이 주먹밥 100엔 세일이나 치즈프랑크 신발매, 또는 모든 반찬을 할인받을 수 있는 쿠폰을 나누어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우선사항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p.150


튀어나온 돌이 정을 맞는다는 말을 하듯이, 사회는 '모두가 가려는 길'을 '가지 않는' 인간에게 혹독한 폭력을 가하고, 죄책감도 미안함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이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지금의 사회는 점점 더 복잡하고 정교하게 발전하고, 생활 방식은 고도화되고, 구성원들의 욕구는 고차원적이 되어가지만, 경쟁은 치열해져서 원하는 것을 얻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데도,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성공과 행복의 방정식에 대한 간섭과 참견은 줄어들지 않는 기분이다. 어른들은 여전히, 어른이 된 우리 마저도, 성적 순으로 행복해진다고 믿고 있는 걸까. 그런 공식이 존재한다고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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