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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콜요청금지 Mar 27. 2022

분리된 기억의 세계

고바야시 야스미

<앨리스 죽이기> 의 작가 고바야기 야스미의 SF 소설이다.


<앨리스 죽이기> 는 현실세계와 책 안의 세계와 캐릭터가 연결되어 있고 사건이 세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이어져서 스토리는 다소 복잡하지만, 재밌게 읽었던 책이었다. 그런 스토리를 쓴 작가가 이번에는 기계식 메모리와 사람 신체의 기억을 오가는 가상의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흥미롭게 그려냈다. 소감부터 밝히면 내가 읽은 일본 소설 중에 <신세계에서> 와 함께 최고의 SF소설로 꼽을 만한 책. <앨리스 죽이기> 는 신선하고 재밌지만 최고까지는 아니었는데, 이 책은 나에게 너무 인상적이었다.



아래는 책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소설의 배경은 갑자기 모든 인류의 뇌에서 장기기억 기능이 사라져서 단기 기억만 남은 인류가, 장기 기억은 메모리칩에 의존하는 미래이다.


책을 읽으면서 며칠 전에 읽은 <메타버스 사피엔스> 가 떠올랐다.

현실과 가상현실을 구분하는 것은 뭘까. 현실의 나와 가상현실의 나는 다른 사람일까? <메타버스 사피엔스> 에서는 가상현실의 나도 나이고, 현실의 나도 나이고, 메타버스란 우리의 세상, 나라는 존재가 확장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분리된 기억의 세계> 는 사람의 장기기억을 담당하는 메모리칩이 다른 사람의 몸으로 바뀌는 사건들을 옴니버스 식으로 서술해나가면서 장기기억 메모리 칩이 나인지, 단기 기억 메모리를 가진 몸이 나인지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을 구분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물론 기억 장애에 대해서도 마냥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무렵 인공적으로 장기 기억을 수행하는 장치가 이미 완성되었다. 원리는 어렵지 않았다. 뇌 내부의 단기 기억 상태를 관측하고 그것을 압축해 반도체 메모리에 기록하는 방식이었다. 사용자가 말이나 영상을 상기하면 자동으로 검색해 관련 정보를 복원, 뇌 내부로 전송한다. 이것은 제1행동자들이 대망각의 초기, 컴퓨터와 스마트폰용으로 만든 데이터베이스 열람용 앱과 같은 원리였다.
-p.70 <막간> 중에서

뇌의 장기기억 기능을 몸 밖으로 흉내 내서 구현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 메모리로 성장하도록 노력하라고 켄토에게 말씀하시면 되잖아요."
> "왜 그래야 하지?"
"아까 말씀하셨잖아요. 비법을 외부 기억으로 보관하지 않으면 문제를 풀 수 없는 게 당연합니다."
> "맞네."
"그럼 켄토가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 "그렇지 않아. 왜냐면 노력하지 않아도 여기에 비법이 담긴 메모리가 있으니까." 이와오는 토시야의 메모리를 가리켰다. "노력하지 않고 노력의 결과만 돈으로 사고 싶네."
-p.97 <제2부> 중에서

오, 돈을 받고 뇌의 장기기억을 빌려주어 대리시험을 보는 에피소드이다. 후에 심오한 반전이 있으니 (곰곰이 상상해보면 예상은 가능한) 호기심이 생긴다면 읽어보기를 권장한다.


우선은 죽은 사람의 기억을 산 사람의 몸에 부활시킨다는 것의 옳고 그름이었다. 그런 일을 하면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흔들릴 것이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개념은 왜 흔들리면 안 되나?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이란, 곧 육체적인 죽음이 아닌가? 육체는 사멸해도 정신은 메모리라는 형태로 존속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죽음의 개념에 저촉되는 것도 아니었다. 애당초 그 인물은 죽은 게 아니다. 죽은 것은 정신이 담겨있던 육체에 불과하다. 새로운 육체를 얻는 것은 옷을 갈아입거나 자동차를 새로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p.177 <제2부> 중에서

축적된 지식과 경험에 대한 장기기억 메모리가 일종의 사람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듯 하지만 책의 결말은 그게 다는 아니다.


현실인지 환상인지 판단할 필요는
어떤 방법으로든 구별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지.
무슨 방법을 써도 구별할 수 없는 것은
처음부터 구별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어.


"지금 보여주는 세계는 당신이 보여주는 거죠?"
> "그래"
"그렇다면 나는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별할 수 없어도 당신은 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럼 환상과 현실은 별개입니다."
> "내가 인식하는 현실이 환상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나?"
"즉 당신이 사는 현실도 현실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말입니까?"
> "현실일 수도 있고 환상일 수도 있지. 그건 나 자신도 판단할 수 없다."
"그럼 세계에는 확실한 게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군요."
> "그렇다"
"그럼 곤란합니다. 어쨌든 이 세계에도 확실한 게 존재할 겁니다."
> "그건 네 사정에 불과해. 세계는 네 처리와는 관계가 없지 않을까?"
-p.230 <제2부> 중에서

다시 <메타버스 사피엔스> 에서 읽은 보스트롬의 10억 분의 1 가설로 돌아왔다. 보스트롬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스웨덴 철학자로, 일론 머스크도 인용한 이 주장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가상 세계가 아닌 진짜 세계일 확률이 10억 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짜 현실인지 아닌지 어짜피 확신할 수 없다는 것. 그냥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이 책에 포함된 옴니버스식 에피소드는 하나하나 다 아이디어가 재치가 넘치고 소중하다. 이런 배경의 세상에 잘 생각해보면 꼭 일어날 법한 사건들을 창의적이고 체계적으로 이야기를 상상해서 생각할만한 주제들을 던지고 있다. 나는 대리시험 에피소드와, 쌍둥이 에피소드가 제일 기억에 남았다. 주제는 선명하지만 생각할 거리는 전혀 단순하지 않고 깊이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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