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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그린 Oct 27. 2020

모네의 식탁, 색을 요리하다

예술경영 season 1_10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

1. 모네의 지베르니 점심식탁


 꽃상추 설탕무침과 순무를 곁들인 오리요리, 토마토의 아래쪽을 얇게 베어내어 속을 비운 뒤 뽀얀 식빵 속살과 삼겹살, 파슬리, 마늘, 샬롯, 버섯을 섞어 만든 풰레를 넣어 만든 토마토 파르시(Tomates farcies)를 푸른색 접시에 담아 식탁위에 올려놓는다. 거기다 색과 맛이 변하지 않도록 살짝 데친 시금치와 올리브유에 볶은 그물버섯, 빗물에 여섯 시간 이상 담가둔 푸른색 강낭콩 찜과 부르고뉴 지방의 붉은색 와인이 식탁 위에 모두 올라오면 두 번의 종이 울린다. 


 바로 인상파 회화의 선구자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점심식사를 알리는 소리다. 1883년 모네는 파리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지베르니(Giverny) 지역의 한적한 저택에 터를 잡았다. 이곳이 바로 말년의 모네가 백내장을 앓으면서도 끝끝내 완성한 <수련(睡蓮)>연작이 그려진 모네의 정원이 있는 저택이다. 이 집은 화가 모네의 창작 혼이 깃든 집이자 그의 인생이 바뀐 집이라 할 수 있는데, 그가 기차를 타고 마을을 지나가던 중 꿈에 그리던 분홍색 집을 발견하고 곧바로 세를 내어 온 가족을 데리고 와서 죽을 때 까지 산 집이다. 

모네의 수련, 파리 오랑주르 미술관(aterlilies : The Clouds , Claude Monet (Musee de l'Orangerie in Paris)) https://youtu.be/x_IoEK1OKTo


 그는 여기서 직접 정원을 가꾸고 농작물을 키워 음식을 해먹었다. 많은 손님들이 이 모네의 식탁에 초대되었다. 그의 점심식사 시간은 정확히 11시 30분이었는데, 음식은 1분만 늦게 나와도 안되었다. 11시에 첫 번째 종이 울리면 모든 식구들이 식탁에 모여들 준비를 해야 했다. 모든 식구들은 이 열한시 반 점심식사를 손꼽아 기다렸는데, 바로 점심식사 시간이 지나야 그들이 진정한 휴식을 맞이하기 때문이었다. 이른 저녁에 잠을 자고 새벽부터 그림을 그리는 모네의 생활습관 때문에 손님들은 주로 점심 식사 때에만 초대되었다. 


 그가 이른 점심식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오후 작업을 할 때 최고의 자연 태양광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자연의 광경, 특히 형태와 색채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변화무쌍한 바다와 하늘 풍경 속의 빛과 색채의 감각을 예민하게 표현하는 화가 모네의 식탁은 한 편의 인상주의 그림과도 같이 생생한 색채와 맛깔스러운 음식들로 가득 찼다. 그는 메인 요리로 나온 음식을 식탁에서 직접 썰어서 나눠주었다. 


오리의 경우 날개를 먼저 잘라 육두구, 후추, 굵은 소금 등을 뿌린 다음 다시 주방으로 가져가게 해 뜨거운 불에 구워오게 했으며, 샐러드는 직접 후추와 굵은 소금, 올리브유와 소량의 양조식초를 섞어 만든 드레싱을 채소에 뿌리게 했다. 그가 직접 주도하는 식탁에서의 요리과정은 어쩌면 단지 요리가 아니라 회화의 제작과정과도 같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식탁 위에서의 위엄과 엄숙함, 식구들과 요리사의 수고스러움은 가히 짐작이 가지만 점심식사 시간과 요리에 대한 명확한 철학은 그의 예술과 너무나 닮아있다. 당시 문화예술계의 큰 후원자이자 사교계를 주름잡았던 모네의 두 번째 부인 알리스 오슈데(Alice Hoschede)의 예술적 취향도 더해졌을 것이지만 그의 식탁은 전원의 풍경을 옮겨놓은 것과 같았다. 실제로 모네는 야외소풍과 연회를 자주 가졌으며, <풀밭 위의 점심> 그림 또한 많이 그렸다. 사교계의 풍부한 경험을 가진 지베르니의 안주인 알리스는 손님의 유형에 따라 눈이 휘둥그레지게 화려한 식탁을 만들거나 때로는 소박한 식사를 내놓았다. 


모네, 풀밭위의 점심(중앙 판넬) , 1865, 캔버스에 유채, 248x217cm, 파리 오르세미술관


 그녀는 모네와 상의하여 손님이 오기 한 주전에 식단을 짜고 손님의 입맛도 세심하기 기록해놓고 아침 채소밭에서 어떤 채소를 가져올지를 정하고 커튼과 식탁보, 접시들을 확인하였다. 르누아르, 시슬레, 세잔, 로댕, 마그리트, 마티스, 카유보트, 말라르메, 카몽도 백작 등 수많은 예술가와 문화예술계 손님들이 기회가 되면 지베르니의 모네의 집에 방문하고 싶어 했다. 


초대를 받으면 그들은 모네의 요청과 성향에 고려하여 자동차가 아닌 센 강을 따라 배를 타고 지베르니 집에 방문했다. 자동차가 고장 났다거나 해서 식사시간에 늦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네의 점심시간은 정확한 시간에 시작되었다. 모네의 점심식탁은 단순한 식사자리가 아니라 빛과 색채로 이루어진 인상주의 회화이자 예술적 교감과 창조가 이루어지는 향연의 장이었다. 



2. 인상주의와 생동하는 색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는 단연코 인상주의 화가들이다. 빈센트 반고흐, 모네, 르누아르, 마네, 시슬레, 드가, 고갱, 세잔 쇠라, 로트랙 등 강렬한 색채와 붓의 터치, 빛과 색채의 떨림을 표현한 인상주의 화가들은 감성을 중요시하는 한국인의 정서와 잘 맞아떨어진다. 화가 모네는 단연코 인상주의의 창시자라 할 수 있다.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1840~1926), <인상: 해돋이 Impression : Sunrise >, 캔버스에 유채, 48×63cm, 1872.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르아브르 항구 앞에서 그린 1872년 작품 <인상, 해돋이>는 당시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인상, 해돋이>? 인상이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 역시 어떤 인상을 받았으니까. 그렇다고 이 작품에 인상이 존재하는지는 의문이다. 붓질에 나타난 자유와 편안함이라니! 제작 초기의 어설픈 장식 융단조차도 이 해안 그림보다는 더 섬세할 것이다!” 비평가 루이 르루아의 평이다. 1874년 개최된 첫 번째 전시회가 이렇게 실패했다. 이 평가받지 못한 작품이 역설적이게도 ‘인상주의자’라 불리게 미술사조의 철학과 사상을 예견하고 선언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양귀비 들판 Field of Poppies>, 캔버스에 유채, 50x65cm, 1873

인상주의 화가 모네의 작품은 단순히 마음속으로 바라본 풍경을 빛과 색채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안개와 빛에 의해 가볍게 흔들리는 색채의 근원, 색채의 정신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자연의 흐름 속에 있는 풍부한 색채를 표현하기에 그림물감의 정해진 색상은 인간의 시지각을 한 방향으로 붙잡아 둔다. “파란색”, “빨간색”, 예전 크레용 색상표에서 논란이 되었던 “살색” 등 우리는 세상의 색상규칙에 영향을 받고 있다.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1840~1926), <파라솔을 든 여인>, 캔버스에 유채, 100x82cm, 1875

아이가 하늘을 붉게, 얼굴을 검은색으로 칠했다고 가정해보자. “왜 하늘은 빨갛게 칠했어? 또 얼굴이 이렇게 검어?”라고 물어볼 것이다. 그리고선 마음속으로 다시 생각한다. ‘대체 이 아이에게 어떤 상처가 있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치유할 수 있을까?’

이를 증명하듯 무수히 많은 미술심리치료 저서들은 색깔의 의미들을 분석해놓았다. “빨강은 원초적인 외침의 심리요, 검은색은 죽음과 상실을 의미한다.” 대체 이러한 규정들이 뭐가 중요하다는 말인가? 왜 치유를 해야 한단 말인가? 미술치료는 원죄설과도 같이 아이들이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아이들을 바라본다.


물론 상처 입은 아이들을 치유할 필요는 있겠지만, 규정화된 색상표의 의미들에 사로잡혀서 사물과 현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은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초상집에서 흰 옷을 입던 풍습이 검은 옷으로 바뀌었고, 검은 옷을 입지 않고 장례식장에 가는 것이 실례가 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색상의 풍습과 경험으로 굳어진 편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클로드 모네, <건초더미, 태양의 마지막 광선>, 캔버스에 유채, 73x92cm, 1890


“자연이 스스로 비밀을 열어젖힐 때, 인간은 자연의 가장 훌륭한 해설자인 예술을 향한 억누를 길 없는 동경에 사로잡힌다.” 세계적인 시인이자 철학가, 문학가인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말이다. 색채는 인지의 객관적인 물리학적 파동현상이거나 반대로 주관적인 인상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괴테는 예술가들이 얼마나 깊이 색채의 본질에 다가가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자연은 색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생명력, 즉 에너지의 생체적 파동인 에테르(ether)로 이루어져 있다. 이 에테르는 그리스어로 “빛남”을 의미하는데, 동양의 기(氣)와 같이 광휘체, 생명체를 의미한다.




색채는 생명 안에서 스스로 빛이 난다. 화가 모네가 인상주의를 이끈 색채의 근원을 확인하기 위해 거대한 참나무 숲과 생생한 자연으로 유명한 퐁텐블로 숲을 산책하고, 빛의 효과를 관찰하기 위해 센 강 위에 배를 개조해 만든 수상작업실을 띄워 일몰에서 일출까지 햇빛에 반사된 은빛 물결과 숲이 우거진 연안들을 관찰했다.


평생 자연을 관찰하고 빛과 색채의 생명력을 표현하던 모네는 안타깝게도 말년에 백내장에 걸려 시력을 잃어갔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눈 수술을 세 번이나 받고 다시 용기를 내어 1916년부터 역작 <수련>을 그리기 시작했다.

모네, <수련> , 1916


모네는 쇠해가는 시력으로 자신의 정원에 피어난 연꽃에 집중했으며, 마치 시각장애인이 눈을 떠서 처음 바라본 세상을 관찰하듯 그는 빛과 수면에 반짝이는 살아있는 수련의 아름다운 색채를 보고 또 그렸다. 빛은 그로 하여금 다시금 살아있는 자연의 생명력 가득한 자연의 색채들을 바라보게 한 것이다.


모네의 식탁은 또 다시 아름다운 빛과 생동하는 음식들의 색채들로 가득 찼다. 100여 년 전 파스텔톤의 벽면을 따라 청색의 방으로 통하는 모네의 레몬색 식당에서 펼쳐진 미적 향연은 여전히 많은 관광객들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생기와 활력을 주고 있다.


모네의 식탁에는 빛과 색채의 아른거리는 진실이 담긴 아름다운 요리가 있고, 자신의 삶과 영혼을 살찌우는 신선한 자연이 가득하다. 우리는 언제쯤이면 모네의 만찬에 초대받을 수 있을까?


글 | 빨간넥타이 두두그린


모네의 지베르니 집 식탁 © 예술가가 사랑한 집
모네의 지베르니 집 주방 © 예술가가 사랑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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