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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그린 Jul 02. 2020

우리는 일상의 작품을 전시한다

예술경영 season 1_11

전시를 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대학교 때 한 학기가 끝날 때쯤 항상 과제전시회를 개최했다. 그 학기 내 들었던 여러 실기 수업에서 제작한 작품 중 가장 선보이고 싶은 작품 한 점을 전시하는 것이다. 처음 과제전에 출품할 작품을 선별하고 제목을 정하고 전시장에 가져다 놓는다.


첫 전시는 학생회관 로비에서 개최했다. 보통 과제전이 최종 기말고사가 되는데 전시된 작품을 교수가 최종 평가하였다. 그러면 학생들은 과제전 당일 아침까지 꼬박 날을 세면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시간이 부족한 이들은 전시장에 갖다 놓고도 색칠을 하고 마무리하기도 한다.

자신만의 특별한 좌대를 가져온다고 낑낑대고, 조명을 이리저리 수정하고, 사다리를 옮기다 물을 쏟는 등 과제전 설치까지는 모두가 부산스럽다. 그런데 과제전이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한 고요가 찾아오고 작품만 덩그러니 전시장에 놓여진다. 관객들은 조용히 자신을 기다리는 작품을 맞이한다.


나는 첫 전시의 설렘으로 많은 고민을 했다. ‘이 작품을 사람들이 좋아할까?’, ‘이 작품을 보면 어떤 기분일까?’ 품평을 받는 기분으로 작품을 설치한 다음 멀찌감치 떨어져 사람들을 지켜봤다.

드디어 첫 관객이 내 작품 앞으로 다가온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작품을 이리저리 둘러보고는 이내 다른 작품으로 이동했다. 약간의 허무함이 있었지만 첫 관객이 내 작품을 감상했다는 마음에 뿌듯함이 강렬하게 올라왔다.


지금이야 1인 미디어 시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보이고 편안하게 평가받는 사회가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캠코더로 동영상을 찍는다는 것 자체가 일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작품을 여전히 필름카메라로 촬영하고 현상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디지털카메라가 있었지만 작품을 촬영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첫 작품을 전시장에 내놓고 첫 선을 보일 때의 그 설렘은 마치 내가 유명한 작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 정신을 모두 드러낸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다.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단지 기술적으로 잘 만들었다가 아니라, 작품에 어떤 메시지를 담았는가가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바로 제목이다. 그래서인지 학생 때는 삶의 모든 고뇌와 무게를 다 담아낼 것 같은 무거운 제목이 멋있어 보였다. 예술가의 깊은 고민과 번뇌를 통해 탄생한 위대한 예술작품인 것과 같은 무거운 제목을 달고 싶어 했다.

<삶의 무게>, <고뇌>, <생의 한가운데서> 등의 제목이 멋져보였다. 참 겉멋이 들어 있었다. 최고의 작품 제목은 <무제 Untitled>였다. 제목이 없다는 것은 작가가 이 작품에 대한 예술혼을 불태운 후 작품을 내놨을 때 “제목이 뭐예요?”라고 묻는 관객에게 멋있게 ‘제목 없음’이라 답하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단순했다. 어떤 이들은 왜 제목이 없냐고도 의아해 하겠지만 현대미술에서 <무제>는 제목이라는 글자에 매몰되지 말고 온전히 작품을 먼저 감상하라는 배려와 작품의 다양한 해석을 열어두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특정 전시회에서는 작품 제목을 작품 옆에 붙여놓지 않고 인쇄된 종이로 대체하기도 한다.


여하튼 과제전시회에서의 내 첫 작품은 내 손을 떠나 덩그러니 관객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 작품은 이제 관객들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이다. ‘내가 생각한 작품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까?’ 참 쓸데없는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 다음 학기부터 난 모든 수업을 과제전에 맞추어 주제를 정하고 작품을 만들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끔 과제전을 떠올린다. 내가 기획한 아이디어나 생각을 전달함에 있어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작품을 제작하여 전시하는 것과 회사에서 새로운 기획안을 제시하는 것,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은 모두 같은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하고자 하는 그 일에 내 생각을 담고,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내놓는다면 그것이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작품이 전시장에서 관객들을 만나 관심과 평가를 거쳐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 빨간넥타이 두두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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