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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Jan 19. 2022

오늘 뭐가 제일 재밌었어?

소화 불량



서른여덟 번째 이야기





아이를 키우면 놀이공원, 동물원, 눈썰매장, 워터파크 등을 반드시 가게 된다.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적어도 이곳 중 한 곳은 꼭 가야 한다. 

첫 아이를 키울 때 나 역시 계절마다 이 장소를 돌아다녔다. 

특히 동물원은 아이에게 그림책 속 동물들을 보여줄 수 있어서 꼭 가게 되는 곳이다. 

하루는 여행 가방 규모의 짐을 싸서  아이를 데리고 **랜드 동물원에 가게 됐다. 

당시는 차가 없어서 지하철을 타고 동물원까지 가야 했다. 


어른이지만 살면서 동물원 갈 일이 뭐가 있었겠는가. 

오랜만에 동물원을 찾은 엄마도 아이만큼이나 신기하고 정신없었다.

아기띠로 아이를 매고도 하나라도 더 아이에게 보여줘야겠다는 교육열에 불타서 

동물원을 이 잡듯 돌아다녔다. 열대동물관부터 식물원까지 동물원 지도에 체크까지 해가며 

최대한 많은 것들을 보여주었다. 몸은 녹초가 되어 정신력으로 집에 돌아왔지만 엄마로서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아 뿌듯했다. 무엇보다 아이가 얼마나 많은 경험을 했을지, 아이의 반응이 너무 궁금했다.


"혜원아, 오늘 뭐가 제일 재밌었어?"

"코끼리"

"코끼리 말고 다른 건?"

"코끼리"

"우리 원숭이도 보고 악어도 봤잖아. 다른 건 재미없었어?"

"코끼리가 제일 좋아."


십 년이 지났음에도 그 순간 아이의 말을 아주 또렷하게 기억한다.

내게도 위대한 모성이 존재함을 처음 느꼈던 그날의 대장정 속에서 

아이가 기억하고 가장 재미있다고 말한 것은 오직 '코끼리' 하나였다.

아이의 말에 온몸의 힘이 빠지고 땅으로 꺼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 알게 된 사실은, 


아이들은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어도 

절대 다 기억을 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 

그 하나가 온전히 아이의 기억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 비슷한 경험은 그 후로도 꽤 자주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온갖 명소를 데리고 다녔지만 

정작 아이는 엄마와 놀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을 기억했다.

심지어 친구랑 놀았던 것을 가장 재미있었던 일로 기억하기도 했다.

아이에게 보여준 그 많은 것들을 아이는 재미있었거나 기억에 남는 것에 끼워주지도 않았다.







내 아이에게

남보다 많이 가르치고 남보다 많은 경험을 하게 하면 남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라 믿는다.

종이 한 장 차이의 진실일 수 있지만 

우리가 아이들에게 주고 있는, 혹은 주려고 하는 것이 

너무 지나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던 씁쓸한 경험이었다. 


한 가지 더,

그 후론 아이에게 "가장 좋았던....." 따위의 질문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 질문만큼 의미 없는 질문은 없는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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