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기억할게요
마흔한 번째 이야기
돌봄의 사각지대를 지키는 '방문간호사'를 취재하러 간 어느 날,
한층에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임대아파트.
방하나에 부엌이 전부인 집에 혼자 사셨던 할아버지.
밥공기 하나, 국그릇 하나
변변한 것 없는 낡은 싱크대가 눈에 띄게 정갈했던 곳.
할아버지에게도 한때 있었던 가족의 흔적이 고스란히 박제된 사진 한 장.
꼭 필요한 그만큼만 놓여 있던 텔레비전 장식장 맞은편엔
주인의 성품이 배어있을 낡은 셔츠와 점퍼가
외로움을 달래며 마주 보고 걸려 있었다.
늦은 나이 만난 그녀는 할아버지보다 먼저 떠났고,
피 한 방울 안 섞인 그녀의 아이들에게 돈도 내어주고 마음도 내어주고
이제는 연락조차 끊어졌지만
할아버지는 "우리 딸, 우리 아들"이라 부르셨다.
할아버지가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건
깨끗하게 빗은 머리와 단정한 옷매무새, 차분한 말투와 군더더기 없이 정돈된 집 때문만은 아니었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하시는 할아버지는 새벽이면 정처 없이 산책을 가신단다.
방문 간호사들은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 혼자 새벽에 나서는 것은 안된다며 신신당부를 했지만
할아버지의 새벽 산책은 멈출 것 같지 않아 보였다.
두 장의 사진을 몇 년이 지나고도 지우지 못한 것은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할아버지가 살았던 흔적을 누군가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