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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Jul 12. 2024

옷장을 비우기로 했다

일생 동안 몇 벌의 옷이 필요할까?



옷을 팔기로 했다. 


옷을 사기로 한 것이 아니라 내 옷을 팔기로 했다.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다는 당*마켓에 옷을 내놓기로 했다. 판매할 옷은 원피스와 가죽 재킷이다. 한동안 원피스에 꽂혀 있었던 때가 있었다. '원피스'란 키워드로 온라인 쇼핑몰 검색을 하는 것이 하루 일과 중 하나였던 때였다. 길을 가다가도 원피스가 눈에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옷가게에 들어가면 나올 때는 내 손에 옷 가방이 들려있기 일쑤였다. 어떤 원피스를 사겠다는 목표는 없었다. 그냥 원피스를 사는 것이 목표였다. 이후 원피스에 대한 나의 관심은 통바지, 스키니 바지 등으로 옮겨갔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랬다.




가죽 재킷에 얽힌 사연은 더 기막히다. 


바야흐로 가죽 재킷이 유행이었던 때였다. 홈쇼핑에서는 온갖 종류의 가죽재킷 물결이었다. 검은색에서부터 초록색 가죽 재킷까지. 긴 버버리 스타일에서 아주 짧은 재킷까지, 홈쇼핑 채널마다 가죽 재킷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몇 번을 고민하고 온라인 쇼핑몰을 뒤지다 마음에 드는 가죽 재킷을 찾았다. 가죽 재켓을 입어본 적은 없었지만 원피스에 툭 걸친 모양새가 꽤 멋스러보였다. 그렇게 생애 첫 가죽재킷이 내게로 왔다. 










그렇게 나에게 온 원피스와 가죽재킷은 가격표도 떼지 않은 상태로 옷장에 남겨졌다. 


'이번 봄에는 입어야지', '이번 가을에는 꼭 원피스 위에 저 가죽 재킷을 입어야겠다'라고 다짐을 했지만 번번이 계절이 지나갔다. 그렇게 원피스와 가죽재킷은 이삼 년 동안 옷장 속에 쥐 죽은 듯 숨어 있었다. 사실 가격표조차 떼지 못한 옷은 원피스와 가죽 재킷만은 아니었다. 옷과 옷 사이에 끼어 존재조차 잊고 있었던 진한 갈색 여름 니트가 있었고, 홈쇼핑에서 5벌을 세트로 구매한 겨울 니트는 검은색 니트 한 벌을 제외하고 나머지 네 벌은 가격표가 주렁주렁 달린 채 서랍장 속에 박혀 있었다. 가격표는 겨우 뗐지만 한 두 번 입고 외면당한 옷들은 훨씬 더 많았다. 



이것들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이사를 앞두고였다. 이사 갈 집은 별다른 수납공간이 없었다. 평수도 줄였기 때문에 가구도 줄여야 했다.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게 수납장과 팬트리 안에 꾸역꾸역 넣었던 옷들을 보관할 곳이 없어진 것이다. 방법은 버리거나 나눔을 하거나 운이 좋다면 팔아야 했다. 하지만 넓지도 않아 보였던 팬트리 안에서 쏟아져 나온 옷들을 보고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옷은 버려도 버려도 버릴 옷들이 나왔다. 4년을 꺼내 보지도 않았던 옷들은 입기에도 나눔 하기에도 팔기에도 어려워 보였다.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같은 종류의 옷들이 수십 가지였다는 거다. 모양과 소재의 차이가 별로 없는 흰색 니트가 십여 개가 나왔다. 바지는 더 충격적이었다. 드레스룸에 걸어 놓았다면 여느 연예인 못지않았을 수십 개의 바지가 수납장과 팬트리에서 쏟아져 나왔다. 가격표도 떼지 못한 옷들도 있었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옷들은 아마도 사서 한 두 번 입었거나 가격표만 떼고 입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나는 이 옷들을 왜 산 걸까?









'혹시'하는 마음에 남겨 두었던 원피스와 가죽 재킷을 드디어 당*마켓에 팔았다. 가격표도 떼지 않은 옷이어서인지 모두 금방 팔렸다. 팔 때의 가격은 살 때 가격의 3분의 1이었다. 한 번도 입지 않았지만 옷들은 중고일 뿐이었다. 팔지 못한 옷 중 깨끗한 것들은 '아름다운 가게'에 보냈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아파트 재활용통으로 들어갔다. 이사를 하면서 옷 절반을 비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직 옷장에는 옷이 가득하다. 지금도 옷장을 채우고 있는 옷을 다시 줄이고 있는 중이다. 



옷을 버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까워서가 아니라 버린 옷들에 대한 죄책감이 더 컸기 때문이다. 도대체 다 입지도 못할 옷들을 사모으고는 다시 옷이 없다는 핑계로 또 옷을 샀던  나 자신에 대한'실망감'이 컸다. 그동안 옷장을 채운 것은 단순히 옷이을까? 어쩌면 옷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마음의 허기를 옷으로 욱여넣어 채우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젊어서는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기준이 옷차림에 있다고 생각했다. 번듯하게 차려입어야 나를 우습게 보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도 했던 같다. 우리는 옷차림으로 상대방을 판단하기도 하지만 여기에서 '옷차림'은 상대방의 정돈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한두 번 보는 사람이 내가 작년과 올해 같은 옷을 입는지 아닌지를 없다. 누군가를 만나면서 사람이 어떤 브랜드의, 얼마짜리 옷을 입었는지를 매의 눈으로 훑어보는 것은 기껏해야 소수의 몇몇이다. 



옷장에 다 넣을 수 없을 만큼 옷을 사놓았던 것을 스스로 인정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옷을 사는 것이 두렵다. 다시 옷장이 채워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다. 비워낸 옷장의 옷도 절반은 입지 않는다. 늘 집어드는 청바지는 한 두벌이 고작이다. 한 계절을 보내도 서너 벌의 옷이면 그만이다. 나에게는 많은 옷이 필요 없었다. 그것을 오랜 시간과 많은 돈을 들이고서야 알게 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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