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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정 Jun 17. 2021

엄마다전화해라

전화를 제때 받지 못하는 수십 가지 이유

'엄마다전화해라'

핸드폰에 찍힌 문자를 보고 놀라 기겁하는 줄 알았다. 모든 첨단 문화를 거부하던 엄마였다. 핸드폰은 전화를 걸고 받는 용도 외에는 쓰지도 쓸 마음도 없으셨다. 어느 날, 엄마에게 문자란 것이 왔다. 처음엔 사기 문자인 줄 알았다. 엄마인 것을 확인하고 보니 문자를 치는 것까지는 하셨지만 띄어쓰기는 하기 힘드셨던 모양이다. 물론 이후로도 엄마는 띄어쓰기를 전혀 하지 않으셨다. 

'31일토요일에온나열락해라'

'숙정아내일몇시쯤에오는거냐10시30분까지오면좋겠는데열락해라엄마도할일이있다'


엄마의 문자는 늘 그런 식이었다. 그렇다고 엄마에게 띄어쓰기를 해야 한다고 말한 적도 말할 생각도 없었다. 대충 무슨 말인지 알 수 있기도 했고 침침한 눈에 자모음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가 일을 하는 동안 문자를 잘 보지 않는다는 거였다. 사실 보았어도 늘 답신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게 맞다. 엄마도 무작정 내 답을 기다리고 있지 않는다. 문자 보내고 바로 답이 오지 않으면 온 가족에게 돌아가며 전화를 하신다. 그럴 때면 큰 아이, 작은 아이가 동시에 내게 와서 전화 좀 하라고 난리가 난다. 즉, 엄마의 문자가 오면 즉시 답을 하거나 전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엄마다전화해라'

"엄마, 무슨 일이야?"

"아니, 잘 지내나 해서. 애들은 별일 없고?"

"별일 없지. 다 잘 지내. 엄마는 몸은 괜찮아?"

"똑같다. 병원 갔는데 약을 먹어도 그 약이 먹으면 아프고 안 먹으면 더 아프고 어제 병원 가서 주사 맞았는데 내가 죽다가 살았다."

"그렇게 아픈데 자꾸 주사를 맞아야 해?"

"안 맞으면 방법 있나. 모르겠다. 니는 몸은 괜찮나?"

"난 괜찮아. 엄마나 조심해. 애들 걱정하지 말고."


"내 옛날에는 애들 다 키우고 결혼시키고 사는 거 볼 수 있게 딱 칠십까지만 살면 좋겠다 했는데 이제 칠십여섯이 됐는데도 안 죽는다."

"이건 또 무슨 얘기야? 남들은 오래 살고 싶다고 그러는데 오래 살아야지."

"니도 이제 칠십되도 안 죽다. 앞으로 오십 년도 더 살 수도 있어."

"엄마, 악담이야 덕담이야?"

"아니, 그르니까 정신 차리고 살라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대화를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래 살아서 우리들 짐 되는 게 싫다는 엄마는 칠십여섯의 나이가 숫자만큼이나 무거우신 모양이다. 엄마의 말을 곱씹자니 불현듯 무서워졌다. 칠십이 돼도 팔십이 돼도 구십이 돼도 안 죽을 수 있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이 뻥 좀 보태서 산만큼 더 남았다고. 그러니까 넌 어떻게 살 거냐고. 정말 냉수 한 바가지를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당장 오늘 일어날 일도 알지 못하는데, 내일 일어날 일은 더더군다나 감도 안 잡히는데 나머지 오십 년을 어떻게 살 거냐고 물으시는 거다. 나를 살릴 사람도 나고 나를 살아가게 할 사람도 나인 오십 년의 시간. 이제라도 차근차근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엄마의 전화에 그날은 하루 종일 멘붕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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