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돈이 모여있는 통장을 살찌울 방법을 찾아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던 중이었다. 은행에 맡기자니 이자가 성에 차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사무소 유리 벽에 진열된 매물을 훔쳐보니 턱없이 부족 금액이라 돌아섰다. 그렇다고 주식시장에 가자니 처참하게 반 토막 났던 아픔이 떠올라 무서웠다.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어슬렁거리던 길에서 그를 만났다. 교리반 동기생으로 인연을 맺은 그였다. 교우들 사이에서 사업을 해서 상당한 재력가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함께 하느님의 자식으로 등록하였고 정기적인 모임도 가졌다. 수시로 그는 찬조금을 내놓으며 모임을 풍성하게 이끌기도 했다. 씀씀이에서 앞뒤를 재는 내 맘은 고개를 떨구었다. 그의 표정은 늘 봄바람 같았고 기도는 품격 있었다. 천국 문이 있다면 그에게는 꼭 허락될 것 같았다.
그런 그가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사업 확장을 위해 돈을 빌렸는데 채권자가 갑자기 상환을 요구한다는 사연이었다. 다음날까지 입금하지 않으면 담보된 물건의 소유권을 빼앗길 처지라고 했다. 얼마 되지도 않는 금액이라는데 내심 깜짝 놀랐다. 역시 노는 물이 다르구나 싶었다. 돈을 빌려주면 이자를 넉넉히 주겠다고 했다. 계산기를 두들겨보니 손해 볼 것이 없겠다 싶었다. 아이의 결혼 자금으로 쓰일 돈이니 계약 만기일엔 꼬옥 돌려주어야 한다며 어설픈 잠금장치를 해 두었다.
정확하던 이자 입금 약속일이 가끔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불안한 맘에 상환을 요구했다. 이런저런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었다. 나의 불신감은 나날이 커졌다. 전화를 걸어보기도 하고 간절하게 문자도 남겨 보지만 급기야 묵묵부답이었다. 맘 같아서는 달려가서 머리채라도 흔들고 싶었으나 그럴 객기도 없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그가 지상철에 앉아 있었다. 나와 그의 눈이 딱 마주쳤다. 그는 슬그머니 내 눈을 피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사람들 앞에서 그를 멍석말이라도 시키고 싶었지만, 화를 눌렀다. 뒷걸음치는 그의 손을 잡았다. 말없이 별 다방을 향해 걸었다. 어둠이 제법 내려앉은 시각이었다.
두서너 발자국 앞서가던 그가 갑자기 앞으로 꼬꾸라졌다. 관절 없는 목각인형처럼 그대로 땅바닥에 내리꽂혔다. 막다른 상황에 몰렸다 싶으니까 연기까지 하는가 싶었다. 두 번 다시 속지 않겠다는 맘으로 대수롭지 않게 말을 걸었다. 땅바닥에 엎어진 그가 숨을 헐떡였다. 머리에서 피가 흘러 얼굴을 타고 내렸다. 덜컥 겁이 났다. 나는 사시나무처럼 떨며 꺼져가는 생명줄을 부여잡고 되살리고자 사투를 벌였다.
잠시 후 싸이렌 소리가 들리며 구급차가 나타났다. 말로만 듣던 심정지라고 했다. 아슬아슬하게 황천길로 향하던 그가 발길을 돌렸다. 땀범벅이 된 나의 몸과 맘은 털썩 주저앉았다. 어줍잖게 혹을 떼려다가 혼쭐이 났다. 죄는 밉지만, 사람의 도리는 해야겠다 싶어서 병문안을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했다. 나의 엉터리 심폐소생술로 인해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했다.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났다. 염라대왕 전에 갔을 놈을 살렸더니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왜 돈을 떼였을까. 쉽게 돈을 벌려는 욕심의 덫에 걸린 것이다. 남의 주머니 상황을 더듬는 촉수가 해파리처럼 발달한 그의 몸짓을 살피지 못했다. 돈 냄새를 맡고 먹잇감을 낚아채는 솜씨가 여우처럼 날렵한 그의 손짓을 보지 못했다. 욕망이라는 흥에 취해 그의 장단에 맞추어 마구 춤을 췄다. 절제되지 못한 막춤이었다. 주동자는 내 속에 똬리를 틀고 앉았던 욕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