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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e Cactus May 03. 2024

7화 사냥명상

아기여우


어둡고 수분이 가득한 새벽이 적절 한때이다. 진한 초록색의 사냥복을 입고 한참을 텐트 안에 앉아있다.  버거운 날은 무작정 숲으로 와서 사냥감에 기다리며 시간을 보낸다. 새아빠와 사냥 다니면서 만든 명상법이다. 이름하여 사냥명상이다. 가까운 사람부터 어색한 사이까지 심지어 혼자 해도 좋다. 준비물은 각자 사냥을 위한 준비물만 있으면 된다.  말주변이 없어도 된다.  엄마가 성대한 두 번째 결혼을 한 후 정원이 딸린 큰집으로 이사 갔다. 집이 크니 방도 많고 도와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린 나의 걱정과 달리 새아빠는 엄마에게 친절했다. 한시름을 놓은 내 머릿속엔 의문이 들었다. 친구 중 새아빠가 있는 아이들은 대개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모든 관심은 급하게 생긴 아이에게 쏟아져 어린 나이에도 우울해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마치 정글의 왕 사자가 권력을 잡으면 그전 권력자의 새끼를 죽이고 자신의 새끼를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나의 걱정과 더불어 말수가 적은 그와는 참 어색했다. 내가 딸이기 때문에 당연히 아들을 원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새아빠는 자신만 챙기고 목숨 거는 짐승들과는 달랐다. 가장 큰 기부자이자 도움이 필요한 곳엔 누구보다 적극적인 가장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새아빠의 사냥명상은 심난한 날은 나의 힘이 되었다. 속상한 날은 총에 대해 질문하면 설명해 주는 새아빠를 보며 기분이 풀렸다. 아빠가 자살한 후 엄마는 양장점을 운영하며 재판을 치렀다. 밥벌이에 충분했지만 엄마대신 어린 내가 가게를 지키는 날이 많았다. 새아빠가 남긴 샷건을 옆에 끼고 가게를 지킬 때는 손님들이 소리를 지르곤 했다. 나는 그가 자살했다고 믿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진중하고 소탈한 새아빠는 한 번도 죽음을 함부로 대한적이 없다. 작은 동물도 함부로 죽이면 안 되고 몸집이 크다고 무조건 쫓아가서 죽이지 않았다. 사슴이 너무 많아지는 시기에 개체수 조절을 위해 사냥을 가거나 나를 훈련시키기 위해 나무 과녁을 만드는 날이 더 많았다. 잡은 동물은 살부터 가죽까지 모두 소비하려고 했다.  우리가 태어난 것처럼 죽을 때도 선택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너무 무서워할 필요는 없고  여행을 온 것처럼 인생을 즐기고 매 순간 행복하게 보내면 된다.  너무 큰 것을 원하지 말고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면 삶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했다.  가장 불행한 것은  자신이 남보다 뛰어나다고 자만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내가 참 불행했구나 싶다.  전 남자 친구와 함께하면서 나는 항상 내가 뛰어나고 이해해 준다고 생각했다.  나의 자만이 나를 불행으로 이끌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신다. 청량하고 땅내 가득 스며든다.  천천히 숨을 내쉬며 짙은 숲색의 뾰족한 텐트사이로 기다란 총구를 내민다. 더 천천히 숨을 들이쉰다. 사실 며칠째 씻지도 않고 먹지도 못했다.  그동안 이용당하고 억울한 감정이 올라와 전남자친구의 모든 짐을 불태워 버렸지만 그것 또한 내가 자초한 일 아닌가? 내가 그를 이해하고 배려해 준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그는 그의 인생을 살고 즐겼을 뿐 나라는 사람의 비중을 두지 않아도 될 정도로 하찮은 인간이었다. 그런 위치를 만든 것 또한 나였다.  인간적으로 그를 탓할 수 없다. 자기혐오에서는 어떻게 벗어나야 할까? 사냥옷을 대충 주워 입고 몇 시간을  앉아있었더니 목이 너무 마르다. 그냥 갈까 싶었지만 아빠는 말했다. ‘고요함을 즐길 줄 알아야 진짜 사냥꾼이야, 단순히 동물을 죽이는 것은 사냥꾼이 아니야.  자연을 읽고 리듬이 같이 녹아들어서 한 부분이 되어야 해.  자연에 감사하고 순리를 빋아들여야해. 삶도 죽음도 자연의 한 부분일 뿐이야.  집중해’  ‘근데 아빠 왜 자살했어? 다음 달에 여행을 가기로 약속했는데 말이야’  그의 대답해 주길 기다렸지만 대답해 줄 리 없다. 온통 내 들숨날숨만이 가득한 고요한 숲. 차갑지만 신선한 공기와 생명의 소리들로 가득 메워졌다. 순간 움직임이 보인다.  


탕!


오래간만에 푹잠을 자고 따뜻한 샤워를 했다. 커피포트를 켜고 식탁에 앉아 마당을 바라본다.  햇빛이 가득한 마당이 아늑하다. 녹아내린 눈사이로 푸른 잔디가 고개를 내민다. 기척에 멈춰 선다. 수풀로 다가간다. 반짝이는 야생의 눈빛이 마중 나온다. 오렌지색 털을 바싹 세우고 금방이라도 공격할 것같이 이를 드러내고 몸을 낮춘다.  제법 큰 새끼를 지키려고 입으로 주워 담는다.  상황을 알리가 없는 새끼들은 끝없이 움직인다. 배가 고프면 자신의 새끼도 먹어치우는 게 인지상정이거늘.  ‘자연을 거스르고 용케 버티고 있구나.’ 새끼와 함께 살기를 선택한 여우는 인근의 야생동물을 피해 마당에 숨어든 것이다.  여우의 입장에선 위험할 수 있지만 그전 먹이를 먹은 기억이 마당으로 인도한 것이다.  먹이를 준 것이 죄가 되어 쫓아내지 못하고 주방으로 가 사냥한 토끼고기를 썰어 가져온다. ‘미안 내가 니 저녁을 훔쳐온 것 같네 돌려줄게’ 멀찍이 고기그릇을 놓아주고 집으로 들어가 상황을 살핀다.  몸집이 커진 새끼들과 달리 빼빼 마르고 볼품없는 어미가 그릇에 얼굴을 파묻는다.  얼마만의 식사일까 씹어는 먹는 건지 삼키는 건지 그릇에 부딪히는 이 소리가 찰랑인다. 부재중 전화가 찍힌 핸드폰을 내려다본다. 전남자친구의 번호에 웃음이 나온다. 오타 가득한 협박문자는 읽을 가치도 없다. 그 많던 상자는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와 시간이 마치 거짓인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남자가 스테이크를 한입 먹는다.

‘식사 초대해 줘서 고마워, 나 토끼고기는 처음이야 ‘

‘잘됐네, 저기 말이야‘

남자가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는다.

’ 나랑 내일 같이 시장선거 갈래?‘

당황한 남자의 얼굴이 금세 화사하게 피며 웃는다.

’좋아, 같이 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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