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le Cactus May 12. 2024

8화 돌아온 배신자

선거일

부츠컷 청바지에 흰 셔츠, 검은색 워커와  잘 어울린다. ‘여기야’  남자는 멀리서 걸어오는 여자에게 손짓한다. 평소와 달리 길게 풀어헤쳐진 머리가 바람에 휘날린다. 야외에선 유난히 더 커 보이는 이반은 베이지색 셔츠가 잘 어울린다.


알래스카는 4년마다 시장선거를 한다. 역사적으로 백인 남성들이 후보로 나왔지만 수년 전부터는 인종차별금지법의 의해서 원하면 누구나 후보가 될 수 있다. 올해는 누구도 짐작 못하던 후보가시선을 압도했다. 짙은 파란 눈의 흰색과 검은색이 적절히 섞인 털을 가진 시베리안허스키 ‘허니링’이다. 허니링은 전설의 구조견 허니와 썰매견바비 사이에서 태어난 시베리안허스키이다. 허니는 뛰어난 수색견으로 10년 이상 구조에 힘썼으며 은퇴 후 입양되었다. 주인이 술에 취해 떨어트린 담뱃불로 인해 집이 불타올랐다. 입으로 문을 물어뜯었지만 소용이 없자 창문으로 몸을 던져 집에서 빠져나와서 달리기 시작한다. 얼마나 달렸을까 피범벅인 허니를 발견한 사람들의 신고로 주인의 목숨을 구하고 표창장을 받게 된다. 바비는 날렵한 허니와 달리 큰 몸집과 파워로 유명한 썰매견이다. 몸집은 늑대만큼 큰데 사람을 좋아해서 눈 쌓인 숲으로 인명구조에 탁월하다. 구조대원과 환자를 태우고 시속 30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다. 허니링은 바비같이 큰 몸집에 허니의 뛰어난 두뇌를 타고나 하나를 가르치면 열 가지를 아는 천재견이다. 험악한 알래스카의 날씨에도 끄떡없이 버티는 지구력과 인내심이 뛰어나며 특기는 한번 맡은 냄새는 절대 잊지 않는 것이다. 물론 구조견생활을 하며 여러 번의 부상당했지만 건강한 태생 탓인지 빠른 회복 후 수색에 투입되었다. 마침내 구조견 생활을 끝낸 허니링은 은퇴 앞두고 후보로 채택되었다. 일각에서는 동물후보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지만 지역에서 어느 누구보다 목숨을 바쳐 봉사한 허니링을 지지하는 의견도 높았다. 인디언복장의 여성, 도복을 입은 아시안남자, 정장차림의 흑인여성까지 다양한 후보자들 사이에 허니링이 웃음 가득 후보 4번을 차지했다.


투표소 밖에는 긴 줄을 선사람들을 위한 점심을 위해 푸드트럭이 가득했다.  간단한 요기를 위한 핫도그, 햄버거, 타코, 한국컵밥에 컵라면까지 메뉴는 매시간 늘어났다. 일찍 투표를 마친 여자는 컵밥트럭의 줄을 섰다. 컵라면을 받아 든 안나를 만난다. ‘허니링?’ ‘비밀’ 급히 주문을 하고 안나가 앉는 테이블로 바라보는데 어디서 많이 보던 사람이 겨자를 흘리며 핫도그를 먹고 있다. 이게 웬일인가? 길건너에 도망갔던 전남자친구가 서 있다. 혹시 몰라 가져온 데이저이글(Desert Eagle)을 잡았다. 오랜만에 본 남자는 배가 나오고 키가 더 작아져있었다. 여자를 발견한 남자가 입에 한가득 핫도그를 머금고 손짓했다. 외면하려고 했지만 마치 친한 친구를 만난듯한 더 커지고 못생긴 얼굴로 다가왔다.

‘살 좀 빠졌나 봐? 나이가 많아서 살 빼기 힘들 텐데’

‘뭐?’

‘예민한 건 그대로네 네가 짐을 안 부쳐서 찾으러 왔지. 온 김에 투표도 하고 말이야, 맞다. 나 출산한 건 알고 있지? 나 이제 딸도 생겼어 보여줄까? 엄마가 어리니깐 더 예쁜 것 같아 ‘

전남자친구의 핸드폰 위로 그림자가 드리운다.

컵라면을 먹고 있던 안나가 밀치며 여자를 보호한다.

인상을 쓰며 덤벼드는 남자를 190cm, 100kg 거구의 이반이 가볍게 밀어냈다.

’ 어디서 말을 붙여 역겨운 놈아‘  젓가락으로 위협하는 안나를 여자는 진정시킨다.

’니 짐은 없어. 한 번만 더 내 눈앞에 나타나면 머리에 구멍을 내버릴 테니깐’

전남자친구는 재킷 안 총을 보고 물러선다. 

‘이대로가지만 끝은 아니야’ 

먹던 핫도그를 바닥에 던지고 자리를 뜨는 전 남자 친구. 

곧 뒤따라간 이반은 핫도그를 주워서 쓰레기통에 담는다.  ‘걱정 마’ 여자를 안아준다.

그가 떠난 후 나의 부족함으로 사랑을 놓쳤다는 감정에 밤을 지새웠다. 거울이 비친 푸석해진 내 모습을 보고 떠난 전남자친구를 납득했던 날들이 많다. 멈출 수 없는 내 나이와 그의 주장으로 물든 기억으로 자기혐오로 스스로를 집어삼키는 날이 늘어났다. 그가 떠난 지 몇 개월이 지났을까 남 탓만 하는 전남자 친구도 나쁘지만 그의 말만 믿고 스스로를 믿지 않은 것 또한 내 탓이다.  처음부터 그는 나를 통제하며 착취하며 마침내는 떠났다.  만약에 사랑하다 마지막에 마음이 변했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그가 도망가거나 내가 떠나거나 헤어지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이제는 안다. 다시는 엮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