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맛도 최고
간만에 서프 루어 낚시를 나가보았습니다.
주로 백사장이 펼쳐진 해변에서 기본적인 캐스팅만 할 수 있으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르가 서프 루어입니다. 잿방어와 고등어가 낚인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에 들떠 아침 일찍 출동해 보았는데...
바닷가에 도착해 보니 더 부지런한 몇몇 루어꾼들이 벌써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멀리 갈매기 떼가 분주하게 날아다니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고등어나 방어의 공격을 피해 표층 가까이 뜬 멸치 떼를 잡아먹으려고 갈매기들이 날아다니고 있는 것이죠. 루어대에 35g짜리 메탈지그를 장착하고는 갈매기가 있는 방향으로 장타를 쳐 1시간가량 열심히 릴을 감으며 액션을 줘봤지만 아무런 입질을 받지 못했습니다. 끝내 고기떼는 사정거리 이내로 들어오지 않았네요.
백사장에서 장소를 옮겨 갯바위권으로 이동해 보았습니다. 갈매기가 전혀 보이지 않네요. 대충 예상은 했지만 여기서도 입질을 받지 못했습니다.
꿩 대신 닭이라고 혹시 무늬오징어가 있지 않을까 해서 에깅대를 들고 30분 정도 흔들어봤지만 역시나 꽝!
물색 좋고, 파도 좋고, 바람 좋건만... 그 어떤 생명체도 루어를 물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조금 더 이동을 해보았는데, 몇몇 조사님들이 갯바위에서 찌낚시로 고등어를 연신 낚아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멀리서 루어를 던져봤는데 밑밥 맛에 길들여진 고등어는 가짜 미끼인 루어를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다급히 감성돔 1호대를 꺼내 찌낚시 채비를 한 다음 조사님들에게 새우 몇 마리를 얻어 던져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금세 힘 좋은 고등어 한 마리가 미끼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을 창고에서 묵힌 푹 삭은 낚싯줄이 문제였습니다. 거의 다 끌고 왔는데 갑자기 바닥으로 고기가 처박는 힘을 못 이기고 원줄이 터져버렸습니다. 놓친 고기도 고기지만, 주인 잃고 동동 떠서 멀리 떠나가버리는 찌를 속절없이 바라보는 심정이란...
그렇지만 계속 망연자실할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잽싸게 채비를 다시 해 캐스팅을 했습니다. 바로 입질이 또 들어왔습니다. 조금 전 녀석보다 힘이 더 대단합니다. 이번에도 원줄이 또 터질까 초긴장하며 릴의 브레이크를 수시로 풀어주면서 옥신각신 밀당한 끝에 겨우겨우 랜딩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등어가 아니라 방어였네요. 어쩐지 힘이 더 세더라니. 여름 방어는 맛이 없어 개도 안 물어간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원줄이 터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파이팅을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렇게 5마리를 낚아 살림통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찍고 보니... 수구초심, 고향 바다를 바라보는 물고기의 슬픔이 느껴져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정말 미안하지만,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너버린 녀석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맛있게 먹어주기로 했습니다. 개 중 큰 고등어 한 마리를 골라 회를 떠서 소주 일병과 함께 먹었더니 눈깜짝하는 사이에 사라져버렸습니다.
며칠 후, 원줄을 새것으로 바꾸고 모든 장비를 단단히 점검하고는 고등어를 낚으려 다시 이곳을 찾았습니다.
미끼로는 새우와 고등어 살을 준비했습니다. 고등어 낚시에 고등어 살을 미끼로 쓰는 게 조금 혐오스럽고 이상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잡어 등쌀에 강한 데다 대물 고등어의 입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등어 낚시에서는 최상의 미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세 씨알 좋은 녀석이 고등어살 미끼를 물어줬습니다. 원줄이 든든하니 마음껏 파이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삽시간에 구름이 끼더니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차로 피신해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보았지만, 1시간이 지나도 그치지 않아 투덜대며 낚싯대를 접어 차에 싣고 출발하려는 순간 거짓말처럼 비가 뚝 그쳤습니다.
그럼 뭐다? 바로 낚시질 들어가야지요. ㄱㄱ
해가 떨어지니 입질이 폭발합니다.
초딩?
ㄴㄴ
중딩?
ㄴㄴ
고딩?
ㅇㅇ
고딩어 아니 고등어 씨알도 준수합니다.
고등어 낚시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웬만한 어종에 비해, 씨알에 비해 힘이 장난이 아닙니다. 엄청난 스피드와 지구력으로, 자기 몸길이의 반 정도나 되는 멸치까지 통째로 삼키는 '바다의 깡패'입니다.
날카로운 고등어 이빨에 1.5호 목줄이 긁혀 터지는 일을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도 모두 16마리를 낚아냈습니다. 다음부터는 좀 더 튼튼한 2호 목줄을 써야 할 듯합니다.
이건 바로 옆에서 함께 사이좋게 낚시한 이름 모를 조사님의 조과로서 가운데 40cm급 한 마리가 단연 돋보입니다. 40cm 고등어라니... 시장에서 이만한 크기의 고등어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했던가요?
'마릿수는 내가 앞섰지만...크흑...내가...져...졌다.'
패배를 인정합니다.
이제 고등어를 손질합니다. 집에 가져오기 전 신선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현장에서 아가미를 찔러 기본적인 피 빼기는 하고 쿨러에 담아 놓았습니다. 신선한 생선을 먹기 위해서는 이런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35cm급을 비롯해 시장 고등어 씨알~ 늠름하고 멋집니다.
잡힌 지 얼마 되지 않아 등 쪽 무늬가 선명하고 눈빛도 초롱초롱하기 그지없습니다. 시장에서 파는 고등어들은 대개 눈빛이 맛이 가 있죠. 그래서 눈을 안 좋게 뜨거나, 잘 못 보면 "고등어 눈깔이냐?"는 핀잔을 듣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이 고등어는 원래 눈빛이 좋습니다. 시력도 매우 좋은 걸로 알려져 있죠.
씨알이 크니 회도 탱탱, 쫄깃하고 소금구이도 맛깔났습니다. 츄릅~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 후 아쉬워 또 회를 떴습니다. 금세 숙달돼서 그런지 아까보다는 회 모양이 더 나아졌습니다. 고등어 회를 안 먹겠다고 손사래를 치던 딸도 한 번 먹어보고는 자리에 눌러앉네요.
순식간에 접시가 비자 더 먹고 싶다고 해서 또 회를 떴습니다. 덕분에 회 뜨는 실력이 점점 더 좋아집니다.
얼핏 생각하기에 고등어 회는 비린내가 심하다거나 매우 물컹거릴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습니다. 잘 뜬 고등어 회는 감성돔이나 농어 못지않은 풍미와 쫄깃함을 가지고 있죠. 더구나 낚시가 아니고서는 이처럼 크고 신선한 자연산 고등어 회를 맛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죽은 후에 급속히 회가 물러지는 고등어의 특성 때문이죠. 고로 낚시인의 특권 중 하나가 바로 이 싱싱한 자연산 고등어 회를 맛볼 수 있다는 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팔레오의 평가 >
손맛 ★★★★★
입맛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