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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레트 Aug 28. 2022

[조수리] 외로움을 바라보다.

벽돌 하나쯤 같이 쌓아달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아직 선선한 3월의 어느 날, 혼자 코로나에 걸렸다. SNS에 광고를 해도, 생각보다 나에게 연락을 주는 사람이 몇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연락을 준다 해도 잠시뿐 작은 방에서 코로나를 이겨내고 격리기간을 견뎌야 하는 건 오롯이 나만의 문제였다. 세상과 시간과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갔다.

꽤 더운 8월, 온 가족이 코로나에 확진되었다. 온갖 우울한 생각들과 함께 새장에 갇혀버린 것처럼 답답했다. 아이 때문에 세 끼를 꼬박 챙겨 ‘뭐 먹지?’를 고민했다. 제주는 육지에서 자주 애용하던 업체들이 배송이 안 된다. 빠른 배송 제품은 모두 일시 품절, 집 앞 마트 배송은 고기류가 안 된다. 배달 음식은 배달비만 기본 5000원, 지겨운 배달 음식은 소화도 잘 안 되는 것 같다.

필요한 걸 사다 달라고 부탁할만한 지인이 없어서 서럽다.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까지 든다. ‘나는 친한 친구들 확진되었다고 할 때 힘내라고 쿠폰 보냈는데..’ 바라고 베푼 건 아니었는데도, 괜히 마음의 폭이 좁아진다. 코로나 걸린 사람들이 더 많은 요즘,

회복하는 건 격리된 사람만의 문제일까.

코로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벗어나고 싶은, 생각하기도 싫은 그 일도 결국엔 우리만의 문제였다. 처음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울어주고, 위로해줘서 감사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그들이 속한 일상을 살아갔다. 현실이 그렇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한다. 하지만 마음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잘 살고 있네.’ ‘멀리 있으니 도와줄 수가 없네’라는 말로 벽을 세울 수 있다. 그렇게 멀어진 사람처럼 굴어오면, 혼자서는 절대 들 수 없는 짐은 나누어지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 드는 밤에는 너무 억울하다. ‘왜’를 반복하게 된다. ‘왜 하필 나에게, 왜 하필 그때, 왜 이렇게 감당하기 힘든 일이, 왜.. 왜..’


한경면 조수리.     


검은 마음을 그리려면 형태를 알아야 했다. 마음에 이름을 붙이고, 더 깊이 바라봐야 했다. 그래서 ‘외로움’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제주에 어디를 가면, 이 외로움을 피하지 않고 왜곡된 모습 없이 그려낼 수 있을까. 나는 조수리 마을이 생각났다.      


조수리는 장미꽃이 필 때 더 아름다운 마을이다.

한참 부부싸움을 하던 시간이 있었다. 서로 상처만 내서 가족이란 이름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았다. 마냥 둘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조수리에 게스트하우스를 하시면서, 부부 상담도 해주시는 분들을 찾아뵈었다. 얼마 전 집 앞 돌담을 다 무너뜨리고, 새로 쌓으면서 없었던 길을 냈다고 하셨다. 새로 난 길이 오히려 전보다 좋아서 집과 길의 구별도 잘 되고 정원도 더 깔끔해지셨다고 만족해하셨다. 함께 식사를 맛있게 하고,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요즘 부부싸움을 너무 많이 한다는 고백에 돌아온 대답이 너무 적절했다.


화나는 거 당연해요. 조금만 부서져도 힘이 드는데, 지금은 위로 아래로 다 무너졌잖아. 찾아가서 위안 얻을 고향 같은 과거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대한 미래도 다 사라져 버린 것 같지. 힘든 거 당연해요. 무리하지 말아요. 집이 무너졌으니 다시 쌓아야 하는데, 이렇게 너무 힘들 때는 그냥 앉아있는 것도 괜찮아요. 가족들 손 잡고, 무너진 집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괜찮아요. 이렇게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같이 옮겨달라고 하고, 도움받아서 하나 또 쌓고 그러면 돼요. 대신 화는 내버리면 상대가 상처받으니까, 지혜롭게 표현하는 방법을 생각해봐요.


얼른 돌담을 쌓아 새로운 길을 내고 싶은 마음에게는 이런 말들이 필요하다. “힘든 게 당연하다. 무리하지 말아라.” 게다가 얼마든지 벽돌 하나쯤 같이 쌓을 수 있다는 말은 숨을 쉬게 한다. 말로는 해결되지 않는 마음도 잠시 손을 내어준다.      

내 외로움은 혹시 어떤 말이 듣고 싶은 걸까. ‘화나는 거 당연해요.’라는 말처럼 적절한 말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조수리 길을 걸을 때만큼은 벽돌 하나 쌓을 힘이 없어 무너진 집을 바라만 보고 있는 뒷모습을 바라봐주기로 했다. 외로움이라 부르기 시작한 마음에게 필요한 말을 해주기보다 가만히 옆에 앉아본다.


나의 외로움은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을 때 찾아온다.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도 말할 수 없을 때. 가족들 앞에서도 울기 힘들 때.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문제를 침묵해야만 할 때. 안타깝게도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는 순간들은 자주 일어난다. 자의든 타의든 침묵의 순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대화와 포옹으로 위로가 되어야 하는 사람들이 가장 가까이 있어도 찾아온다. 그러니 이겨내는 방법 같은 건 없다.


하지만 외로움을 만나러 간 조수리를 스케치해보니 용기라는 물감이 있어야겠다. 벽돌 쌓기를 도와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혹여나 거절당해서 하나쯤 쌓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해도 괜찮다는 단단한 색 말이다. 물론 용기는 금방 생기지 않는다. 게다가 용기는 필요할 때마다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결국 어렵게 빚어낸 색 없이 그림을 마무리하기로 하고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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