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시장과 저녁 시장의 차이

담습자가 세상의 인심을 묻다 - 전국책

아침 시장과 저녁 시장의 차이

“팀장님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A책임이 조용히 내 자리로 찾아왔다. 느낌이 좋지 않다.

“무슨 일이지요?”

“B팀에서 자리가 났다고 함께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요. 그쪽이 제 전공과도 맞고 제 실험실 선배님들도 많이 있고…..”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난 연구원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자신이 흥미를 가질만한 연구를 해야 열심히 하고 그래야만 좋은 결과를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든지 자신이 지금 하는 연구가 재미없다고 생각되면 더 흥미 있는 과제를 찾아보라고 이야기 해왔다.

하지만 시기가 공교로왔다. 그 동안 진행해 오던 과제가 CEO에 의해 갑작스레 중단된지 한달 정도밖에 안된 시점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팀을 옮기는 것에 많이 섭섭했다.


사실 A책임과의 인연은 조금 미묘했다. 내가 처음 과제를 시작해 보겠다고 아이디어 하나 달랑 들고 겁없이 도전했을 때 나에게 주어진 자원은 나 하나였다. 하긴 뭘 믿고 귀중한 자원을 투입하겠는가? 그렇게 혼자서 끙끙대며 3개월동안 아이디어를 가다듬고 연구센터장님을 몇 번 찾아뵈며 지원을 요청드렸다. 실험할 공간도 필요하고 사람도 필요하고 시약 사게 비용 지원도 좀 해주시고 등등 필요한 것이 너무 많았다. 새로운 과제를 진행한다는 것은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인 만큼 센터장님도 고심이 크셨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센터장님이 부르셨다.

“김책임 A책임이라고 있는데 한번 만나보시고 함께 일할만 한지 알려주세요.”

함께 일할 연구원이 필요했던 나는 그날로 A책임을 만났다.

“전공은 어떤 것을 했어요?”

A책임의 전공은 내가 연구하려는 분야와 거리가 좀 있었다. A책임은 명문대학교에서 화학공학으로 박사까지 한 인재였다. 화학공학이라고 들었을 때 그쪽에서도 고분자 하는 분들이 많으니 괜찮겠지 했는데 A책임은 진성 화학공학에 가까운 연구를 했다.


사람들이 화학과 화학공학을 많이 혼동한다. 나도 고등학교 때는 둘 사이의 차이가 무엇인지 몰랐었으니까. 일일이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화학공학은 화학과 관련이 있기도 하지만 실제 연구하는 주제는 꽤 거리가 있다. 물론 화학도 범위가 너무 넓어서 같은 화학이라는 범주에 들어가 있지만 서로 소통이 어려운 분야들 투성이다. 예를 들어 분자생물학을 연구하는 화학자는 물리화학을 연구하는 화학자보다 생물학자들과 더 소통이 쉬울 수 있다. 양자화학을 연구하는 화학자는 물리학자들과 더 친근감을 느낄 것이다. 내가 연구하는 고분자 화학은 전체화학이라는 분야 중 아주 일부일 뿐이다. 그 중 내가 연구하려는 고분자는 전체 고분자화학 중 아주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여기에 딱 맞는 사람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나 마찬가지다. 일년에 수백명이 넘는 화학 연구자들이 석박사를 취득하지만 이중에 내가 연구하는 분야에 잘 맞는 것은 둘째 치고 연관 있는 연구자도 열명 내외 정도밖에 안될 것이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A책임의 전공은 정말 거리가 멀었다.


“제가 연구하려는 분야는 굉장히 새로운 고분자입니다. 아마 들어보지 못했을 거예요. 사실 저도 익숙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A책임은 고분자 중합 해본 적 있나요?”

“아니요. 그쪽은 경험이 없습니다.”

한숨이 나왔지만 이 친구를 놓치고 나면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이미 그 전에 센터장님이 소개해 준 연구원이 나랑 맞지 않다고 한번 거절한 이력이 있기에 더 이상 기회를 달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제가 연구할 과제를 소개 시켜드렸는데 혹시 관심은 있으신가요?”

“예. 잘 모르는 분야기는 하지만 재미있어 보이네요.”


나는 면접 후 센터장님께 A책임과 함께 일하겠다고 말씀드렸고 A책임은 나의 첫번째 팀원이 되었다. 사실 A책임은 학력과 실력이 좋아서 일단 인재 확보 차원에서 선발을 했는데 마땅히 전공에 맞는 팀을 매칭하지 못하고 있었던 실정이었다고 한다. 사실 보통은 각 팀의 리더들이 자신의 팀에 꼭 필요한 사람을 전공면접을 통해 선발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입사 후 팀 없이 지내는 신입은 흔하지 않았다. 그러니 적당한 팀을 못 찾고 있는 A책임이 센터장님에게도 나름 고민되는 존재였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A책임과 나는 한팀이 되어 과제의 초창기부터 온갖 고생을 하며 팀을 만들어 왔다. A책임은 아주 뛰어난 연구원은 아니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일을 맡아서 나름 제 몫을 해주었다. 나는 A책임이 나의 첫 과제의 첫번째 팀원이었고 함께 고락을 했기에 과제가 중단되고 새로운 과제를 모색하는 이 혼란스러운 시기를 나와 함께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새로운 과제를 하겠다고 분투하고 있는 나에게 모든 팀원이 함께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A책임이 가장 먼저 떠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내가 떠나겠다는 연구원 붙잡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A책임에게 섭섭함을 느낀 것은.



전국책 제나라 부분에는 맹상군과 관련된 일화가 많이 나온다. 맹상군은 전국 사공자 중의 한명이다. 다른 사공자들 대비 굉장히 순탄한 삶과 죽음을 맞은 사람이다. 전국사공자는 제나라의 맹상군, 조나라의 평원군, 위나라의 신릉군, 초나라의 춘신군으로 이들은 자신의 높은 권력과 부를 이용해 수천명의 빈객을 모아 거느리며 세력을 키웠다. 빈객은 말 그대로 세력가의 집에 머물던 문객으로 다양한 분야의 재주를 가진 사람들을 모아 놓은 사적인 싱크탱크라고 할 수 있다.

맹상군은 상국 (재상)의 지위까지 올랐다가 실각하여 자신의 영지인 설땅으로 좌천된 적이 있었다. 그러다 빈객인 풍훤의 재지로 다시 복권을 하여 제나라의 수도로 복귀하게 되었다.


담습자가 교외까지 맹상군을 마중 나와 모시며 물었다.


“그대는 제나라 사대부에게 아직까지 원한을 품고 있습니까?”

“그렇소”

맹상군은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럼 반드시 그들을 죽여 버릴 작정입니까?”

“그렇소.”

“일에는 반드시 끝맺어야 할 게 있고 이치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을 아십니까?”

“무슨 말이오?”

“일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은 죽음을 말하며,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은 부귀하면 모여들고 빈천해지면 떠나 버리는 그런 것을 말합니다. 청컨대 시장을 비유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시장이란 아침에는 사람들이 들끓지만 저녁이 되면 텅 비고 맙니다. 그것은 아침 시장을 사랑해서라거나 저녁 시장을 미워해서가 아닙니다. 구하는 것이 있으면 가고, 없으면 떠나 버리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대도 원망을 덜어 두셔야 합니다.”

이 말을 듣자 맹상군은 원한을 가진 오백명의 명단을 적어 두었던 첩을 칼로 잘라 없애 버리고 다시는 말거리로 삼지 않았다.

전국책 (고려원, 임동석 譯解, p104)


난 위의 이야기에서 시장의 비유를 정말 좋아한다. 아침의 시장을 사랑해서도 저녁의 시장을 미워해서도 아니다. 단지 아침의 시장에는 구하는 것이 있고 저녁의 시장에서는 구하는 것이 없을 뿐이다.

세상사람들의 인심을 가지고 원망해서는 안된다. 나에게 구하는 것이 있으면 찾아오는 것이 이치이고 나에게 구하는 것이 없으면 떠나가는 것 또한 이치인 것이다. 그러니 나를 떠나더라도 원망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일화를 전국책에서 발견하고 위안을 받았다. 우리는 누군가를 좋아하고 미워해서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아니구나. 그저 필요에 의해서 모였고 그 필요가 다하면 다시 흩어질 뿐이구나.


A책임이 떠난 후로 입사한지 얼마 안된 팀원들부터 하나 둘 떠났다. 다른 회사로, 다시 학위를 하러, 다른 팀으로. 결국 마지막까지 나와 함께 하기 위해 남은 사람은 한명 뿐이였다. 그 사람이 나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남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와 함께 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 마음이 어떠했든 좋아할 것도 원망할 것도 없으리라. 사람들 인심이라는 것이 결국은 자신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이익이 되는가를 기준으로 결정되는 것이기에. 특히나 회사라는 조직이 그럴 것이다. 회사는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모인 집단이 아니다.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팀이 존재하고 그 목표가 달성되어 성공하는 것이 공동의 이익이기에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만 생각하면 너무 삭막할 것이다. 아마 그보다는 조금 더 사적인 친목을 나누는 사이 정도는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 친구처럼 지내는 사람들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만약 회사 생활에 친구를 만들었다면 나름 복 받은 사람이리라. 그 사람은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 같은 존재이니까. 그러니 회사 생활에서 누군가 너무 자신의 이익에 맞추어 행동한다고 비난하거나 섭섭해 하지 말자. 그것이 전체 팀의 이익에 반하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니까. 세상의 이치가 인심이 다 그런 것이니까.


우여 곡절 끝에 과제를 다시 제안하고 팀을 꾸리고 정식 과제화가 되었다. 과제를 진행하다가 이슈가 발생하여 마침 전문 지식이 풍부한 B팀의 팀장에게 문의하였다. B팀과의 미팅날 A책임도 함께 나왔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하였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업을 하기로 했다. 몇 년 만에 다시 만났지만 어색하지 않다. 회사일로 만난 사이 회사일 하는 것이기에. 난 A책임의 전문 지식이 필요했고 그래서 함께 일한다. 마치 아침 시장에 무언가를 구하러 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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