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받아들이기-논어
같음과 어울림
내가 파트 리더로 있을 때였다. 고객사와의 평가 등으로 점점 업무량이 증가하고 있어서 사람이 더 필요했다. 다행히 팀장님의 배려로 다른 파트에서 일하던 N대리가 합류하게 되었다.
같은 팀에서 일하지만 파트가 나뉘어 있다 보니 N대리가 어떤 스타일의 사람인지 잘 알지는 못하였다. N대리와 함께 일한지 얼마 안되어서 다른 파트의 리더와 티타임을 가질 때였다.
“N대리랑 일하는 것 어때요?”
“글쎄요. 뭐.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열심히 일하는 스타일이라서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렇군요. N대리가 함께 일하기 조금 어려운 스타일이라고 들어서요.”
갑자기 호기심이 일었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요?”
“음. 저도 그냥 전해들은 것인데 N대리가 고집이 조금 있다고 하더라고요.”
“고집이요?”
“예. 그러니까 뭔가 실험을 할 때 지시한 방향이 아닌 자기 생각을 고집해서 리더랑 종종 마찰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군요.”
그런 일이 있은 후 천천히 N대리의 언행을 살피니 그 말이 맞는 듯 했다.
N대리는 실험 후 결과를 공유할 때 나와 다른 해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 다르게 다음 실험을 진행하고 싶어할 때가 많았다. 리더로서 일정에 쫓기는 상황에 이것저것 다 해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 마냥 다 받아 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난감하였다.
논어 자로편에 화(和)와 동(同)에 대한 글이 나온다. 매우 짧아서 조금 깊게 생각해야 이해가 되는 구절이다.
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자왈 군자 화이부동 소인 동이불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화합하나 부화뇌동하지 않는다. 소인은 부화뇌동하나 화합하지 않는다.”
- 논어 (민음사, 동양고전연구회 역주 p285)-
예전 20대에 논어를 읽었을 때는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그냥 넘어갔으나 40대에 들어 다시 이 구절을 접했을 때는 무릎을 탁 치게 되었다.
화(和)의 사전적 의미는 “뜻이 맞아 사이가 좋은 상태”, “화합하다”, “온화하다”, “같다” 등의 뜻이 있다. 동(同)은 “한가지”, “무리”, “같다”, “균일하게 하다” 등의 뜻이 있다.
쉽게 말해 화는 화합하다 잘 어울린다는 뜻이고 동은 같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이 두 단어를 대비 시킬까? 화합하다와 같다가 왜 반대의 의미처럼 사용되고 있을까? 화합하다에도 같다의 의미가 있는 만큼 둘 사이에 차이점 보다는 유사점이 더 커보이는데 말이다. 위의 문장을 보면 문맥상 화는 좋은 의미로 동은 나쁜 의미로 쓰인 듯 한데 왜 그럴까?
위의 해석만 가지고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부화뇌동은 왠지 나쁜 의미이지만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소인은 왜 부화뇌동하는 사람이란 말인가? 이것이 또 왜 화합하는 사람과 대비되어야만 한다는 말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 다른 고전의 일화를 하나 더 살펴보도록 하자.
안자춘추 내편 (內篇) 간상 (諫上)에 나오는 안자와 경공(景公)의 일화이다.
경공이 공부라는 언덕에 놀이 가서, 멀리 북쪽을 조망하여 제(濟)나라 영토를 구경하였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아! 예로부터 죽음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안자가 이 말을 답았다.
“옛날 상제께서는 사람의 죽음을 좋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유는, 어진 자는 쉴 수 있고, 어질지 못한 자는 굴복하게 하니까요. 또 만약 예로부터 죽음이 없다면 태공(太公), 정공(丁公)이 아직까지 이 제나라를 차지하여 임금 노릇을 하고 있었을 것이며, 환공(桓公), 양공(襄公), 문공(文公), 무공(武公)은 그 재상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왕께서는 삿갓을 쓰고 거친 옷을 걸친 채 괭이를 들고 농사나 지으면서 저 밭두둑 가를 오가는 농부에 불과할 터인데, 죽음을 걱정할 겨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말에 경공은 화가 나서 얼굴을 붉히며 불쾌히 생각하였다. 잠시 후 양구거가 여섯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나타났다. 경공이 물었다.
“저 자가 누구요?”
안자가 대답하였다.
“양구거 입니다.”
경공은 다시 되물었다.
“어떻게 아시오?”
안자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무더위에 말을 빨리 몰면 심한 경우엔 죽고 맙니다. 그렇지 않다 해도 적어도 말은 힘들어 약해지거나 상하고 맙니다. 그런 일을 할 자가 양구거가 아니면 누가 있겠습니까?”
경공이 다시 이렇게 말하였다.
“그렇다면 양구거와 나는 서로 어울리는(和) 성격이군요!’
이 말에 안자가 다시 비꼬았다.
“이것은 같은 것(同)이지 어울리는 것이 아닙니다. 어울린다는 건 임금은 달다고 할 때 신하는 시다고 하고, 임금이 싱겁다고 할 때 신하는 짜다고 하는 경우입니다. 지금 양구거는 임금께서 달다고 할 때 같이 달다고 합니다. 이런 것은 같은 것이지 어찌 어울린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안자가그립다. (건국대학교 출판부, 임동석 옮김. P152-154)
안자는 제나라의 명재상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이름은 안영 (晏嬰)이고 제나라의 영공, 장공, 경공 세명의 임금을 모셨다. 안자는 항상 강단이 있으면서도 언행에는 해학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위 대화에서도 임금을 상대로 할말을 다한다.
위 대화 중 마지막 구절에 우리가 알고 싶어한 화와 동의 차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동은 말 그대로 자신의 생각이 없이 동조한다는 것이다. 남이 하는 말과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한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생각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그런데 세상에 모든 일에 있어서 다른 사람과 생각과 취향이 같을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다른 사람과 같은 생각과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표현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강요에 따른 굴복일 수도 있고 이익에 따른 아첨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이는 자신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따르는 행위이다.
공자나 안자가 비판한 것은 이러한 같음이 결국 자신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어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전형적인 간신의 행동인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동이불화 즉 어울리지 못하면서 같은 것을 추구하는 사람을 소인이라고 한 것이다.
그럼 화 즉 어울림이란 어떤 것인가? 어울린다는 것은 같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같은 것은 어울릴 수 없다. 서로 다른 것을 함께 두었는데 그것들이 “다투지 않고” “화합하고” “뜻을 맞추어 가는” 상태 이런 상태를 어울린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 화는 서로 다른 것들의 모임이다. 서로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어울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다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상대방과 나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다음은 그 다름이 틀린 것이 아니고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다르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배척한다면 절대 함께하거나 어울릴 수 없다. 이제 서로 다름의 가치를 인정했다면 다음은 이런 다름의 공존을 통한 발전을 모색할 수 있다. 그렇다 공존 즉 함께 존재해야 한다.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닌 함께해야 한다. 우리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할 수 있다. 매우 아름답지만 정말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공자는 군자는 화이부동 즉 어울리지만 같지 않다고 한 것이다.
어울리지만 똑같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된 것이다. 서로 다름에도 같게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전제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같게 한다는 것의 위험성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는가?
다시 N대리와 나의 이야기로 넘어와 보자. 자신의 의견이 강한 N대리와 나는 과연 함께 할 수 있었을까? 다행히도 그랬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N대리는 열정이 넘치는 연구원이었다. 보통 회사 들어온지 얼마 안된 연구원은 적응하기도 바쁘고 적응해서 자신의 일을 할만하면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N대리는 해보고 싶은 것이 많은 친구였다. 즉 내가 생각하는 연구원의 제 1 조건인 호기심이 매우 많은 사람이었다.
솔직히 자신이 하는 연구에서 어떤 결과가 나왔을 때 그것이 좋은 결과든 나쁜 결과든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궁금해 해야 한다. 그러한 의문이 다음 실험의 시작점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호기심이 없는 사람은 실험이 끝난 후 자신의 상사를 바라보면서 그럼 다음에 뭐해야 할까요 하는 말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절대 훌륭한 연구원이 될 수 없는 사람이다. 또한 연구란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한 행위이다. 즉 나도 모르고 N대리도 모르고 팀장님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평등하게 잘 모르는 사람들인 것이다. 다 같이 모르는 경우에는 결국 생각의 범위가 넓을수록 정답에 조금 더 가까워 질 확률이 높아진다. 생각의 범위가 넓어지려면 다양한 생각들이 나와야 한다. 만약 내가 나의 생각만 고집한다면 우리파트의 생각은 나 하나의 생각으로 끝난다. 다양한 아이디어나 창의적 생각 따위가 나올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머리 하나에 팔과 다리만 여럿인 기괴한 괴물이 되고마는 것이다. 그래서 팀장이 된 지금도 나에게는 큰 룰이 하나 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팀원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나와 같은 생각의 팀원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막말로 내가 2배 일하면 그 팀원이 하는 일까지도 다 할 수 있으니까. 아무 생각 없이 일하는 조직 그러니까 팔다리만 필요한 조직이라면 상관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연구를 하는 조직 창의성이 필요한 조직이라면 그래서는 안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을수록 조직은 창의적이 될 수 있다.
물론 N대리는 호기심이 왕성하지만 방향은 중구난방이라서 제어가 필요했다. 내가 쓴 방법은 끼워 넣기였다.
“N대리. 좋은 생각인 것 같네요. 그쪽 방향으로 실험을 진행해 봅시다. 그런데 이것과 이것은 조금 겹치는 것 같으니까 하나는 빼고 저것은 유의미한 데이터를 뽑기 위해서 모수를 늘려야 할 것 같네요. 그리고 내가 보니까 이런 실험을 추가하면 더 재미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N대리가 하고 싶어하는 것은 인정해 주고 방법의 문제만 수정해 준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실험 방향을 슬쩍 추가해서 함께 진행하도록 한다. 이 방법은 생각보다 잘 먹혔다. N대리는 의욕이 충만한 친구라서 자신의 의견에 동의해주면 추가되는 일쯤은 즐겁게 할 수 있었다. 나도 만족하고 N대리도 만족하는 어울림이었다.
나와 N대리는 꽤 합이 잘 맞았고 결과도 괜찮게 나왔다. 이전에 나에게 N대리에 대해 말했던 파트장은 N대리가 바뀐 것 같다며 놀라움을 표했다. 사실 N대리는 그대로였다. 나는 그 N대리의 장점을 골라 쓸 수 있는 서로 만족할 만한 방법을 찾았을 뿐이었다. 다름에 대한 존중과 다름과 함께 할 수 있는 포용력 이것이 함께 발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임에 틀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