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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대 회사원 김씨 Jun 11. 2023

대낮에 마시는 맥주

일상에서 탈출하기

 일년에 한 두번 시간 내서 해외여행을 가는 것만큼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은 없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 해외여행 자유화에 힘입어 배낭여행이 유행했다. 처음에는 왜 비싼 돈을 주고 해외로 나가나 의아했었다. 그러던 중 여자친구를(오해하지 마시기를. 지금의 와이프 되시겠다.) 만나 이곳 저곳을 다니며 여행의 즐거움에 눈을 뜨게 되었다. 두 아들이 내어날 때 빼고는 매년 한 두번 해외로 나갔다. 지금은 4인가족이 되어 조금 부담이 되지만 그래도 이것을 끊을 수는 없다. 

 나와 와이프가 여행을 다니며 가장 행복해 하는 시간은 현지의 맛집을 찾아 근사한 식사를 하며 시원한 맥주를 홀짝이는 것이다. 특히 더운 날 한낮에 마시는 맥주란…. 정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한가지 부작용은 대낮에 벌건 얼굴로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이지만 뭐 어떤가 나를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인데.


 난 여행지에서 대낮에 마시는 맥주가 왜 그렇게 좋은지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적이 없었다. 그냥 애미애비도 못 알아본다는 낮술이 이런 느낌이구나 하며 와이프와 낄낄 댔을 뿐이다. 

그러다 허완 작가의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라는 책에서 대낮에 마시는 맥주 이야기를 읽으며 무릎을 치게 되었다. 


 낮술은 묘한 해방감과 자유를 느끼게 한다. 예전 같으면 사무실에 갇혀서 일하고 있을 시간인데, 이렇게 맥주를 홀짝이고 있다니 행복하다. 그래서 맥주를 파는 카페를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들어갔다가 맥주가 보이면 ‘ 이 카페, 제대로군.’ 하고 멋대로 평가한다. 그런 배려가 고맙다. 카페의 밝고 좋은 분위기에서 맥주를 마실 기회를 줘서. 흔한 기회가 아니므로 커피는 다음에 마시기로 하고 맥주를 시킨다. 취해서 난동을 부리지 않고 조용히 마시다 가겠습니다. 

 볕이 잘 드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맥주를 마시며 길거리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행복이 별건가 싶다. 

-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허완, 웅진지식하우스, p117)


 프리랜서인 작가가 대낮에 맥주를 홀짝이며 열심히 일터를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나도 한때는 그런 적이 있었지 하며. 상상을 해보라. 남들이 열심히 일하는 평일 오후에 느긋하게 햇살을 즐기며 마시는 맥주라니. 이건 돈주고도 바꾸지 않을 경험이리라. 

 그래서 어느 날 나도 오후 반차를 내고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그 동안 맛집으로 소문을 들었지만 갈 엄두를 내지 못했던 회사 앞 피맥 맛집에 들어가 오븐에서 갓 구운 피자에 수재맥주를 마시며 오후의 따스한 햇살을 즐겼다. 

 아! 이 맥주의 맛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이라 많지는 않았지만 길가에는 사람들이 바삐 오가고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며 점점 줄어드는 맥주잔을 아쉬워 한다. 서서히 취기가 오르지만 기분 좋은 더위에 피식 피식 웃음이 나온다. 회사근처에서는 그토록 많은 회식을 했건만, 똑 같은 술이 이렇게 다른 기분을 낼 수 있다니. 여행지에서 낮술이 그렇게 맛있었던 것은 그곳이 여행지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일상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일상에서 벗어난 그곳은 따뜻하고 여유로웠으며 나의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보라! 회사가 코앞인 이곳에서 나는 여행의 기쁨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결심 했다. 종종 땡땡이를 치자고. 그리고 여행지가 아닌 지금 이곳에서 여행지의 기분을 만끽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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