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한번 하면 나는 백번을 한다 – 중용, 안자
내가 결혼하고 얼마 안되서였다. 나는 와이프가 나의 어떤 점을 보고 결혼까지 생각하게 되었나 갑자기 궁금해 졌다.
“그런데 너는 내 어떤 면이 좋아서 결혼까지 생각하게 되었어?
와이프는 잠깐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글쎄 성실한것? 너의 장점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성실하다는 거잖아. 꾸준하고. 엄마가 항상 그랬거든 남자는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와야 한다고. 너는 딱 그럴 것 같았거든. 뭐든 쉽게 실증내지 않고 잘 해내잖아.”
아하! 갑자기 장인어른이 생각나서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아마도 장모님의 조기 교육이 와이프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준 듯 하다.
장인어른은 한마디로 오늘을 사는 분이다. ‘나’와 ‘지금’의 삶에 충실하다. 아마도 그리스나 남미에 태어났다면 꽤 충만한 삶을 살았을 텐데 하필 성실함이 미덕인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딸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아빠가 되었다.
내가 생각해 봐도 내가 내세울 만한 것은 성실하다는 것 외에는 없는 것 같다. 머리가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고 신체가 강건한 것도 아니고 외모가 출중한 것도 아니다. 그냥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사는 것 그것이 나의 강점이다.
대학원에 다닐 때 전국의 난다긴다 하는 수재들과 함께 했다. 머리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어떻게 버틸까 걱정도 되었다. 몇 년간 그들과 함께 하면서 내가 확인한 바로는 보통 사람들이 떠올리는 천재, 수재는 그 중에 10%나 될까 하는 정도다. 그럼 나머지 사람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리가 좋기보다는 체력이 좋았다. 실험할 때도 밤샘이 일상이고 시험기간에는 도서관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러면서 놀거는 다 논다. 하루에 몇 시간 안자고도 거뜬히 생활이 가능한 사람들이 즐비하다. 그들은 뛰어난 두뇌와 월등한 학습능력, 판단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시도하고 실패해도 다시 해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보다 체력도 떨어지는 난 어땠을까? 내 생존법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그냥 꾸준히 하는 것이다. 남들이 틈틈이 인생을 즐길 때 난 틈틈이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때는 공부를 했고 지금은 일을 한다. 나처럼 모자란 사람이 다른 사람과 같이 해서는 같은 선상을 달릴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무리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들보다 걸음이 느리니 계속 걷는 것일 뿐이다.
이런 이야기는, 이런 삶은 너무 진부하고 재미 없어 보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찬탄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우리가 그들을 찬탄하는 이유는 그들이 희소하기 때문이다. 다들 그만큼은 한다면 뭐 그리 놀랄 일이 있겠는가? 능력을 타고나지 않은 나 같은 필부가 할 수 있는 것은 꾸준히 노력하는 것, 그 외에 없다.
그래서 나는 중용을 사랑한다. 중용의 이 말은 모든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긍정이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다 이룰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고 이르고자 하는 곳에 못 닿을 수는 있어도 더 가까이 갈 수는 있다는 삶에 대한 긍정이다.
안자와 같이 뛰어난 사람도 그냥 행동에 옮길 뿐이라고 항상 쉬지 않고 실행할 뿐 자신의 탁월함에 어떠한 비법이 없다고 이야기 한다. 어쩌면 겸손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랬을 수도 있다.
40년이 넘는 내 짧은 삶을 되돌아 봐도 작지만 내가 이루었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다 그렇게 얻은 것들이었다. 쉬운 길이 없나 전전긍긍해도 결국 내가 갈 수 있는 길은 그 길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