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s에 산다
Kos에 산다.
인도네시아 취업 후 자카르타에서 교육받는 한 달 동안 Kos에서 살았다. Kos는 인도네시아어로 하숙집을 뜻하는데, 광범위하게, ’ 주인이 관리하는’ 원룸도 포함이 된다.
집값 비싸기로 유명한 자카르타 남부 쪽에서 개인실은 10만 원부터 시작하는데, 10만 원짜리 방에는 에어컨이 없다. 에어컨이 달린 방은 적어도 20만 원은 내야 했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원룸 타입, 외국에서는 스튜디오 타입이라 불리는 방은 최소 30만 원부터 시작한다. 그래도 나는 회사에서 지원금을 받았기에 내 돈 낼 필요 없이, 40만 원짜리 방에서 머물 수 있었다.
주변을 관찰하기 좋아하는 내게, Kos는 너무나 재미있는 곳이었다.
아침에 눈을 떠 창문 밖을 바라보면 Kos 앞마당이 보인다. 백발이 성성한 주인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낙엽을 쓸지만, 청소에는 영 재능이 없는지 낙엽이 줄지 않는다.
출근 준비를 마친 후 출퇴근용 차량을 대기하며 방 안에 앉아 다시 밖을 바라보면 이번엔 할아버지 대신 Kos 매니저가 마당을 쓸고 있다. 빗자루질 한방에 낙엽이 휙 하며 날아간다. 마당이 금세 깨끗해졌다.
퇴근하고 방으로 돌아오면 밤새 엉망이 된 침대보가 정리되어 있고 그 위에는 빨래된 옷이 곱게 놓여있다. 빨래는 다리미질을 했는지, 뽀송뽀송하다 못해 바삭하다.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앉아 저녁은 뭘 먹지 고민하는데, 옆방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엿들으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자연스럽게 귀가 기울어진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인도네시아어를 거의 할 줄 몰랐었다. 말은 들리는데, 정작 아무 말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도 저렇게 사람 웃는 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좋다. 나도 저렇게 같이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사람이 그리운 걸 보니 오늘 하루도 힘들었나 보다. 힘들 땐 맥주지. 배달 앱으로 닭구이를 시킨 후 맥주를 사러 마트에 다녀온다.
맥주를 사서 계단을 올라오는데,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Kos에 아기가? Kos에는 가스레인지와 인덕션이 없는데 아기 이유식은 어떻게 만들지? 어린 조카 이유식을 만들어 줄 때, 불이 꼭 필요했는데. 그런데, 조카는 잘 지내고 있을까? 어린 조카 돌본다고 고생하고 계신 어머니는 괜찮을까? 갑자기 기분이 쳐진다. 비닐봉지 안에 들어있는 맥주캔이 부족해 보인다.
방으로 들어와 술상을 펴는데, 온종일 의자에 앉아있어서 그런가 딱딱한 식탁에 앉기가 싫다. 음식을 쟁반에 받쳐 조심스레 침대 위로 올라와 앉는다. 쟁반이 흔들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자세를 잡은 뒤 리모컨으로 티브이를 튼다. 티브이에는 일주인 동안 똑같은 회차를 재방송 중인 드라마가 나온다.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저 한국말이 듣고 싶다.
눈을 멍하니 뜨고 티브이를 보며 맥주를 마시다 잠이 든다. 지루한 하루가 끝이 났다.
사람 사는 재미가 있는 Kos속에, 나만 외딴섬에 같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