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hn 강 Jul 08. 2024

밀린 일기 쓰는 중 - 인도네시아

첫 접대

첫 접대

  

인도네시아 한식당에 가면 테이블 위에 올려진 음식만으로 테이블 주인의 국적을 추측할 수 있다.     


 잡채가 있다면 한국인이 없는 테이블이거나, 한국인도 있는 테이블일 확률이 높다.

한국인 중에 잡채를 시키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고깃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데, 순두부찌개가 올라와 있다면, 한국인은 아니다.

입가심으로 된장찌개, 김치찌개, 국수는 시켜도 순두부찌개는 거의 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왜 남의 테이블을 보고 있는 걸까?     

약속 시각보다 20분 정도 일찍 식당에 도착했다.


 손님이 오지 않는다.

소장님과 같이 있지만,

같은 숙소에 살며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소장님과 할 말도 없고, 하고 싶은 말도 없다.

뻘쭘하게 남의 테이블이나 쳐다보는 신세다.     


 시간은 느릿느릿 흘러간다.

1분이 10분 같고, 10분이 1시간 같다.     


 또다시 옆 테이블을 보면서 이번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고깃집에서 고기를 안 시키고 바로 부대찌개에 소주를 시키다니. 저 사람은 아마도 여기 단골이겠지?


 고기를 구워주는데 굳이 직접 구워 먹겠다고? 의심이 많거나 고기를 엄청 잘 굽거나 둘 중 하나겠지. 아니다 어쩌면 고기를 직접 굽는 감성을 좋아할지도 몰라.     


 소주를 반 병이나 남겼네? 와 반 병이면 거의 만원인데. 회삿돈으로 술 마시는 건가.      


별의별 잡생각을 다 하고 있을 때 손님이 들어온다.


자리에서 일어나 상석으로 손님을 안내한다.


 첫 잔은 가볍게 소맥으로 시작한다.

손님이 주량이 약하단 말에 비율을 맥주 8 소주 2로 맞춘다.

첫 잔을 시원하게 들이켠다.     

소장님이 손님과 대화에 집중하는 동안 나는 옆에서 소맥 만드는 기계가 된다.


 분위기가 무르익을수록 소맥에서 소주의 비율을 알게 모르게 높여간다.     

2에서 출발한 소주 비율은 알게 모르게 0.1씩 0.2씩 올라가며 마지막에는 금단의 비율인 맥주 6: 소주 4에 근접했다. 하지만, 알아채는 사람은 없다. 술에 취하는 만큼 미각도 둔해지는 법이다. 10년 넘게 소맥을 말며 깨달은 주량 조절 못하고 술 취하게 만드는 비법이다. 자매품으로는 소주 아주 조금씩 더 따라서 취하게 만들기가 있다.     

 

 2차로 노래방에서 맥주나 한잔 더하자며 일어서는데, 손님은 급하게 취기가 올라왔는지 혀가 살짝 꼬였다.     

 기분 좋게 취한 손님은 오늘따라 너무 취한 것 같다며, 일찍 가보겠다는 말과 예의상 다음에 필드나 같이 나가자는 형식적인 인사말을 남긴다.     


 하지만 소장님이 바로 달려들어 요일과 날짜를 협의한다. 예의상 한 말에 소장님이 너무 적극적으로 달려들자, 손님은 대충 약속해 놓고 나중에 취소시키지 하는 표정으로 일정을 정한다. 여기까지만 하면 초보자다. 중급자가 되려면 여기서 코를 걸어야 한다.     


“실장님. OO 날짜에 골프 괜찮으십니까? 멤버로 XX회사 ##부장 하고 같이 가려는데 어떠십니까? 예. 그럼 그날 뵙겠습니다.”     


 소장님은 친분이 있는 손님과 동종업계 사람을 끼워 넣어 약속을 취소할 수 없도록 만든다. 맛있는 저녁이나 먹고 공짜 노래방이나 가려던 손님을 골프장까지 끌고 간다. 진짜 영업은 골프장에서 시작된다.  

   

차에 드러눕듯이 앉은 손님에게 90도 인사를 하며 방긋 웃는다. 


 첫 단추를 잘 끼운 것 같다.     

이전 07화 밀린 일기 쓰는 중 - 인도네시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