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 칠
제작된 철골이 창고에 도착하면 페인트를 칠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녹막이 페인트지만, 노가다 일꾼 말고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페인트칠에 규칙이 있다.
아니, 규칙을 떠나 상식적으로 페인트가 마르면 뒤집어야 한다.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일 것이다.
그런데 내 상식이 무너졌다.
트럭에 실려온 철골을 길게 늘어뜨려 바닥에 깔아 놓는다.
바닥에 깔린 철골에 스프레이 건으로 페인트를 뿌린다.
저 멀리에서 시작된 작업은 한 시간쯤 지나자 창고 앞쪽까지 칠해진다.
1차 도포가 끝난 페인트공은 한쪽 편에서 담배를 피운다.
그사이 지게차가 철골을 뒤집는다.
호이스트가 없는 열악한 환경임에 지게차로 뒤집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페인트를 뿌린 지 1시간 만에 마르지도 않은 철골을 뒤집는 건 이해가 안 된다.
지게발로 철골을 밀어 넘어 뜨려 뒤집는다.
쿵 쿵 거리며 바닥이 울리고, 툭 툭 하며 덜 마른 페인트가 바닥에 떨어진다.
칠이 벗겨지는 게 눈에 보인다.
나는 또 고민한다.
왜 저럴까?
외국에 있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페인트도 그중 하나겠지.
음.
아무리 찾아도 합당한 이유가 없다.
황당한 건 뒤집어서 칠 작업이 끝난 철골은 땡볕에 방치된다.
저럴 거면 빨리 뒤집을 이유가 없다.
이유는 아마도 빨리 일하고 쉬고 싶어서겠지.
한숨을 쉬고 직원들을 교육한다.
당연하게도 내 말을 들어주는 이는 없다.
한 번도 펴본 적 없는 담배가 피고싶다.
"미스터 화내지 마세요, 어차피 현장 가면 페인트 다시 칠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다시 칠하고 마르는 동안 작업이 지연되거나, 일단 철골 먼저 조립하고, 사람이 밧줄에 매달려서 페인트 칠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일거리를 최대한 적게 만들어줘야죠!"
"어파치 선적하고 하역할 때 지게차로 하면 다 벗겨집니다. 그만 이야기합시다."
제 할 말만 다한 창고지기는 자리를 떠난다.
이들은 생각구조가 나와 다르다.
내가 문제인 건가.
대체 어디서부터 일을 해야 할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